반대로 움직이는 이유

by 서울경별진

나는 디자이너로 취업을 하고 싶었지만, 스물여섯에 고작 직업학교를 수료한 나를 써줄 곳은 없었다. 나는 교복회사를 다니며 모은 돈으로 중고 재봉틀을 샀다. 내가 처음으로 큰돈을 주고 사고 싶은 것을 산 것이다. 그때의 기분은 당장이라도 내가 디자이너가 된 듯 기뻤다. 당시 나는 이상봉 디자이너와 최범석 디자이너를 롤 모델로 삼고 있었던 때라 내 디자인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쉬는 날이면 재봉틀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취업이 어려웠던 나는 의류 관련 경력이라도 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다니기 시작했다. 백화점에서 나는 나이 많은 누나, 조용한 언니였다. 내가 일했던 층에 직원들은 매니저를 제외하고 거의 20대 초반이었다. 매장마다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아서 옆 매장끼리 친하게 지내거나, 밥을 같이 먹으러 다니거나 했는데 내성적이었던 나는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첫 출근 날 내가 받은 첫인사는 “담배 피우시나요?”였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 내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고,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친한 친구가 없었다. 첫인사부터 “아니요”라고 말한 나는 그 이후로 그들과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 빼고 모두 흡연자였고, 쉬는 시간에 맞춰서 흡연을 하러 나가곤 했는데 나는 함께 나갈 명분이 없었다.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들로 그들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일 하는 곳마다 분위기라는 것이 있는데 그 넓은 층에 많은 아르바이트생들과 있는데도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나를 믿고 함께 해줄 한 사람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다. 하나도 가지지 못해 본 사람은 하나만 있어도 만족을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백화점일은 무척 고단했다. 8시 30분에 출근하고 8시 30분에 퇴근했다. 11시간 내내 서서 일을 하고, 쉬는 시간은 30분~1시간 정도이다. 백화점 식당 밥은 메뉴도 다양하고 정말 맛있었다. 3천 원이면 기름진 음식들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내가 일한 매장은 C브랜드의 가방이나 잡화를 파는 곳이었다. 하루에 3개 팔면 많이 파는 것이다. 우리 매장의 재고는 다른 매장 창고를 같이 썼는데 무척 좁아서 사람 한명이 지나다닐 통로에 양쪽으로는 모두 옷이나 가방으로 가득찼다. 우리 매장 박스는 맨위 선반이나 구석진 곳에 있어서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큰 박스에 가득 들어있는 가방들을 꺼낼 때면 너무 무거워서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친해지기 힘든 알바생이었기 때문에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나또한 여전히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고, 먼지와 땀범벅이 된 채로 고객들을 응대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련했구나 싶다. 나는 결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니저님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여러 매장에서 근무 요청을 해주어 아르바이트비를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다닌 매장에 매니저님은 자리를 자주 비웠는데 어느 날부터는 매니저님은 거의 매일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본사 모르게 다른 백화점에 다른 매장을 오픈했던 것이었다. 그 일로 내가 다니던 백화점과 본사에서 매장 정리를 요구했고 본사에서 내가 있는 매장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매니저님이 자리를 자주 비우는 관계로 본의 아니게 나와 통화를 하게 되었고, 근무도 꽤 오래 했던 터라 내게 매장을 인수할 생각 없냐고 제안을 하셨다. 다른 매장 매니저님들도 내가 나이가 있으니 아르바이트 말고 매장을 운영하라고 하셨다. 500만 원만 있으면 된다고 권유했지만, 내게 500만 원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내게는 정말 큰돈이었고, 항상 집에 빚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빚을 또 지고 싶지 않았다. 좋은 기회가 있겠지. 좋은 자리가 또 있겠지 하고 말았다. 나는 언제나 취업하기를 원했다. 남들보다 어디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그래도 내가 들어가서 일할 만한 곳, 내 자리 하나쯤은 있을 거야 생각했다. 백화점을 그만두고 취업 자리를 찾아다녔지만,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서류부터 탈락이 되었는지 연락 오는 곳도 없었다. 표현할 수 없었지만 상심은 컸다.


나는 취업 자리를 알아보는 데에 또다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서 다른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남는 시간에 취업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들어간 곳이 원단 회사였다. 원단 회사는 취업준비생인 나에게 꿈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나의 학력 때문에 정말 꿈이 되어버린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도 입사 제안을 받았지만 고졸이라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입사가 정말 간절했다면 한 번 더 붙잡을 수 있었겠지만 내성적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기대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잡는 법을 알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아빠에게 "네가 뭘 할 수 있겠냐.”라는 말을 줄곧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혼자 해내지 못하면 답답함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아빠는 가끔 본인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충격요법을 하는 거라고 했다. 못한다고 하면 반발심에 더 하게 되는 심리가 있다고. 청개구리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게 만드는. 사실 아빠도 우리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집요하게 그것을 하려고 노력했다. 본인의 기질이 그렇기에 내게도 그렇게 하신 것 같다.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라는 책에 보면 부조리를 느낄수록 더 살고자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와도 비슷한 심리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기다림이 아닌 다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