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 뒤에는 좋은 글도 있다는 것

by 서울경별진

가구회사에서 퇴사한 후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야 말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빠는 줄곧 내 미래가 걱정된다며 자신의 일을 배워서 같이 하자고 했다. 이 업종은 희망이 있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인데다가 본인이 해왔기 때문에 내 컴퓨터 실력과 본인의 노하우를 토대로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돈 못 벌어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거야." 내가 그 말을 할 때마다 아빠는 내게 사람 구실이나 하고 살 수 있겠느냐는 등의 듣기 싫은 말들을 자주하시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 말들을 듣기는 하나 듣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지켰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도 그렇고, 영화관이랑 백화점에서 손님들을 만나면서 많은 나쁜 말들을 들어왔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말들은 나를 괴롭히지만. 그래서인지 나와 같이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하는 존재가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내가 가난하고 여린 친구들을 돕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가 그들의 삶과 같지 않고, 다 알 수 없지만 나와 닮은 사람들을 보면 힘들 때는 힘들다고 해. 도와달라고 해. 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사실 힘들 땐 누군가가 무언가 해주기보단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내 모든 슬픔이 사라져 버릴 때가 있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내게 필요했던 건 그 한마디였다. 나는 혼자였던 모든 시간들을 일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보냈다.


음악을 들은 후에 음의 일부가, 가사의 일부가 부분적으로 남아 내 기억에 속해질 때가 있다. 기억의 잔재가 나를 부를 때는 나는 그 음악을 다시 듣곤 했다. 듣고 있어도 더 듣고 싶을 때는 음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처음부터. 이처럼 내 깊은 내면의 어떤 기억이 나를 부를 때, 또는 나를 찾을 때, 나는 그것을 다시 만나러 간다. 기억속으로.

음악이라는 예술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는지. 다른 예술보다 음악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것 같다. 전시회를 가는 것보다 더 친밀하기도 하고, 음악은 어떠한 구분 없이 사람들과 같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베토벤은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음악은 가난한 자들의 행복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 말이 처음에는 머리로만 알았었는데 지금은 마음으로 이해가 된다. 내가 가난의 기준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지만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뭔지는 알기 때문에. 가난은 단순히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마음이 바닥난 사람도 가난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부요해질 수도, 가난해질 수도 있다. 이런 여러가지 형태의 가난을 통해 자신의 상황 속에서 자신이 찾는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만큼 더 값진 일은 없는 것 같다. 자신만의 행복을 갖게 되는 것이니까.


우리는 하루 종일 음악을 듣는다. 나는 집에서, 집 밖으로 나가면서, 회사에서도, 영화관에서도, 백화점에서도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음악을 트는 일이었다. 그리고 출근하거나, 퇴근하거나, 집에서도 언제나 음악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다. 일하는 곳들이 다 멀었기에 버스나 거리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음악은 때론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듯 했다. 창작자의 가사가 내 마음과 동일할 때 말이다.


좋은 음악 뒤에는 좋은 글도 있다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반대로 움직이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