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하교 후에 특별한 일이 없을 땐 집으로 바로 왔다. 그래서 아빠와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빠가 호주에서 돌아왔을 때는 내가 이미 커버린 상태라 아빠와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어렵고 어색했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관계는 중요한 것 같다. 그 시기를 놓치면 거리를 좁히기란 쉽지 않다.
내가 살았던 집들은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조립식 집이 대부분이었다. 아빠의 간판공장 안에 집을 개조하거나, 가게 안에서 살거나 했다. 집과 공장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손님들이 오시면 커피를 타는 일을 내가 해야 했다. 아빠는 믹스커피 타는 법을 알려주고는 했다. 물은 이 정도만 넣어라, 물 온도는 이렇게 해라. 등등 말이다. 고등학교 때는 아빠의 간판 디자인을 도와서 글씨를 따드리거나, 이미지를 찾아드리는 일을 도와드렸다. 아빠는 낮에는 간판일이 더워서 힘들다며 새벽에 일어나서 일하고, 밤 11시, 12시까지도 일을 하고는 했다. 아빠의 간판공장은 불이 잘 꺼지지 않았고 타카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잠들지 않은 날에는 나도 늦게까지 아빠의 일을 도왔다. 지금 다니는 회사 근처에 가구 공장이 있는데 야근을 하고 집에 가는 날이면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타카소리가 났다. 그러면 나는 이제 들을 수 없는 아빠의 타카소리가 그리워지곤 한다. 아빠는 열 아홉, 스무 살 즈음 서울에 올라와 돈을 벌기 위해 간판을 배웠고, 스물여섯쯤 간판가게를 열었다. 아빠의 나이보다 크고 보니 아빠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아빠가 일에 빠져 사는 것을 보고 자라서 인지, 나도 일에 빠지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일주일 동안 회사일을 하고도 새벽까지 글을 쓰는 나를 보면 말이다.
그때는 해본 적 없는 일이라 많이 헤매고 아빠도 내게 젊은 애가 그것도 못하냐는 식의 말을 자주 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직장에서 오래 일 하는 것을 보고는 그때서야 나를 인정해주셨다. 나는 거창하고 멋진 일은 아직 해보지는 못했지만, 내게 차곡차곡 소소히 쌓인 일들이 소중하다. 이렇게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소재들이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