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자격증
간판 업은 내가 20대 초반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할 때쯤 법이 바뀌어서 옥외광고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에게만 사업자를 내주었다. 언니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아빠는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아빠 대신 내가 자격증을 따야 했다. 나는 정보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기본 자격증이 2개가 있었다. 그리고 졸업 후에 운전면허증은 취업할 때 좋다고 해서 미리 따놓았다. 나는 아빠의 일을 도울 때 이미지나 폰트를 찾아드리거나, 메일을 보내드리는 일만 했지 간판을 만드는 건 해본 적이 없다. 아빠 혼자 간판을 뒤집어야 할 때 나가서 같이 들어드리는 것이 다였다.
간판은 형광등까지 설치하면 굉장히 무거웠는데 나는 간판을 들 때마다 아빠가 “그것도 못 드냐?” 하는 말이 듣기 싫어서 죽을힘을 다해 뒤집었었다. 그러다 나 대신 언니가 들어주고 오면 아빠는 언니가 나보다 힘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꼭 칭찬처럼 들려서 뿌듯했다. 그때 내가 죽을힘을 다해 들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체력단련을 한 적이 있는데, 팔 굽혀 펴기를 시켰었다. 당시 우리는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적었다. 38명 정원에 여학생은 3~4명 정도였다. 나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을 즐기곤 했는데 갑자기 개수를 채워보고 싶다는 오기가 생겨서 온몸이 부들거리는 대도 개수를 다 채웠다. 여학생들은 다 포기하고 앉아 있었고 남학생들도 힘겨워할 때쯤이었다. 그때 나를 본 남학생 두 명이 있었는데 나를 보던 눈빛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때 내 이름을 부르며 쳐다보았는데, 아마 나를 독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아빠를 위해 자격증을 따야 했다.
처음 시행되는 자격증 시험이라 정보도, 자료도 없었다. 자격증 책도 한 권밖에 없었다. 나는 독학을 해야 했다. 아빠는 내가 공부할 머리가 아니라고 늘 말해왔기 때문에 내가 자격증을 따는 건 어쩌면 내 자존심을 건 일이었다. 시험은 일 년에 두 번 있었는데, 하루에 필기와 실기를 같이 봐야 했다. 그래서 시험시간만 4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나는 영화관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오후 4시부터 밤 11~12시까지 공부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행정법 같은 나라 법을 외워야 하고 간판을 만들 때 필요한 정보들과 볼트의 이름까지 외워야 했다. 나는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실기는 디자인을 하고, 글씨체도 알아야 하고, 잘 보이는 배경색과 글씨의 색상 등을 잘 정해야 했고, 시험지에 적힌 볼트들을 제 위치에 정확히 그려 넣어야 했다.
첫 번째 자격증 시험 날 아빠와 나는 시험장에 같이 갔다. 시험장에 젊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보통 자격증 시험은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시행되곤 했는데 내가 간 곳은 실업계 남고였다. 필기시험이 끝나고 아버지와 근처에서 국밥을 먹었다. 무뚝뚝한 우리는 대화 없이 밥을 먹었다. 나는 목소리 때문에 여자 친구들의 오해를 자주 샀기 때문에 애교라면 질색이다. 보통 막내딸이니 애교를 잘 부리지 않냐 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사실 내가 우리 집에서 제일 예민하고 무뚝뚝하다.
실기 시험까지 보고 나오니 소나기가 오고 있었다. 아빠와 나는 차까지 갈 우산이 없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로비에 서있었는데 비가 그칠 생각이 없자 아빠는 학교 밖으로 뛰어 나가셨다. 나는 아빠가 우산을 사러 가신 줄 알았다. 여전히 로비에는 사람들이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 아빠가 보였다. 그런데 아빠가 들고 오는 것은 우산이 아닌 거대한 파라솔이었다. 아빠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무지개 빛깔에 당시 편의점이 아닌 동네 슈퍼 앞에나 있을 법한 파라솔을 들고 걸어오셨다. 나는 웃으며 뛰어서 파라솔 아래로 들어갔고 우리는 또 말없이 차까지 걸어갔다. 파라솔이 커서 그런지 빗방울 하나 맞지 않고 차까지 올 수 있었다.
우리는 트럭을 타고 다녔는데 아빠는 트럭에 그 파라솔을 던져두고 차에 올라타셨다. 아빠는 그렇게 4시간을 기다려주셨다. 나는 그날 시험에서 필기만 붙고, 실기는 떨어졌다. 처음 보는 시험이었기 때문에 필기라도 붙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시험은 몇 달 뒤였는데 실기 공부만 하면 돼서 큰 부담은 없었다. 두 번째 시험 날은 엄마가 함께 가주셨다. 엄마는 내가 보이는 학교 앞 벤치에 앉아서 내가 고개만 들면 보이는 곳에 계셨다. 나는 그날 실기를 합격했다.
내가 배우는 것들이, 내가 했던 공부들이 나중에 필요할 날이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취업에 필수라고 하는 토익이나 토플등 스펙은 아무것도 없었고 단순히 학교에서 배운 것들, 자격증 3개, 5개월 내내 그렸던 사람의 인체, 아르바이트하면서 동냥하듯 배운 것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워둔 것들이, 해왔던 것들이 내가 살아가면서 필요했던 것들이었음을 알게 된 뒤로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언젠가 필요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슨 일을 하든 꼼꼼하게 배우고 노력했다.
내가 부족하다고 지적받은 것이 있으면 파고들어 공부하곤 했다. 지금의 나는 결과보다 그 시간들을 버텨냈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더 많이 기억에 남는다. 부족하다고 느낄수록 더 간절해지는 법이 내게는 너무나 잘 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