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질 수 없는 너

예술에 빠진 이유

by 서울경별진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특별한 기대를 준다. 우리는 언제나 특별함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저 생활비가 필요할 뿐. 하늘이 예쁘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아이. 어린 시절에는 그림 그릴 종이가 없어서 신문지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아홉 살. 처음으로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 때인 것 같다. 기억이라는 것, 추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인지 할 수 있는 시기에 머릿속에 남아버린 시간여행 표와 같다.


같은 반 친구가 그림대회에서 상을 타는 것을 보고 나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으로 상을 타고 싶었다. 내가 그린 그림을 누군가가 좋아해 주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메달을 목에 걸어보고 싶었다. 다음 그림대회에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상상력과 신문지로 단련한 그림실력을 그 한 장의 종이에 쏟아부었다. 그 당시 누군가가, 그러니까 어느 누구도 내 그림을 평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칭찬이었다면 내 인생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미술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나는 그때의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름이 호명되자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상장은 물론, 은메달까지 받았지만 그 멋진 메달을 목에 걸 수 없었다.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네가 어떻게 은상을 받았지? 이해할 수가 없네.” 당시 매번 그림 상을 탔던 친구는 나 때문에 상을 못 타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게 메달을 걸어주지도 않으시고 내 작은 손에 쥐어주셨다. 그리곤 그 친구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네가 받을 수 있을 거야, 실망하지 마.” 나는 졸지에 그 친구의 상을 빼앗아간 나쁜 친구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로 아홉 살이었던 나는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상장과 메달을 들고 자리에 들어와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방에 넣었다. 한동안 나는 그 친구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기억하며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 날은 어린 내게 가장 절망스러운 하루였을 것이다.


내게는 한 살 많은 언니가 있다. 글쓰기에 재능이 남달랐던 언니는 글에 관련된 상장과 미술 관련 상도 꾸준히 타곤 했다. 언니는 이미 상이 익숙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생에 첫 상이 었기에 특별했다. 언니는 나와 같은 미술대회에서 동상을 탔다. 언니는 동상을, 나는 은상을 탔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내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집에서 메달을 꺼내 보이며 엄마에게 보여줬지만, 언니의 그늘에 가려진 빛났던 은메달은 자신의 자리가 서랍 속이었던 것 마냥 깊은 곳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내 그림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구나. 나는 그 뒤로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아홉 살이었던 나는 이 감정과 기분을 표현할 수 없었다. 아니, 표현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을 만큼 무척이나 속이 상했다는 것.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으로 내 슬픔을 표현했던 것이다.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열다섯 살이었다. 그때 카툰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마침 학교 동아리로 애니메이션과가 생겼다. 한 컷의 그림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있는 카툰의 매력에 나도 모르게 동아리를 등록했다. 다시 그림을 그리려니 손이 굳어서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림이 재능이었다면 몇 년을 쉬어도 실력은 남아 있었을 텐데, 내게는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중학교 때 그림의 대한 기억은 나쁘지 않다.


엄마는 어릴 때 전집 같은 책을 사주셨는데 가난했던 우리는 그 수십 권의 책들을 한 권도 버리지 않고 매일 읽어댔다. 집에 있는 내내, 화장실을 갈 때도 똑같은 책들을 몇 년 동안 읽었다. 이사를 갈 때도 책들은 빠짐없이 들고 다녔다. 그 책은 상식과 과학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만화로 되어있었다. 읽은 만큼 쌓인 내 머릿속에 지식들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기에 카툰은 더없이 좋은 도구였다. 여전히 나는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 뒤에 있어야 했지만 욕심부리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미리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 카툰은 항상 1등 친구의 옆에 실리곤 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게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구나 하고 관둬버렸던 아홉 살의 감성은 이제, 아무도 봐주지 않았던 내 그림이 누군가에게 선택되었고, 어딘가에 실릴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에 욕심을 버리니 조금씩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내가 잡아서 잡아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책 선택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끊임없이 같은 책을 수십 번을 읽어 닳게 한 이유는 나의 뇌를 쉴 틈 없이 움직이게 만든 무언가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다음에 읽으면 이해되고, 읽어서 이해되었던 부분이 어느 날 다르게 해석되곤 했다. 우리의 생각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 활발해지고 능숙해지고, 책을 읽을 때 움직이는 뇌는 탐스러운 기름들을 추출해내는 것과 같다. 짜인 기름들을 잘 보관해두면 삶을 살아가며 필요할 때에 넣을 수 있는 한 방울 지혜가 될 것이다. 좋은 그림, 좋은 책, 좋은 음악은 무료한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고로 예술가들의 영감과 활동에 지원할 필요가 있다.


피카소가 말했다. 모든 어린이들은 예술가라고. 재능 있는 아이들이 예술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홉 살 때 내 그림을 좋아해 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어쩌면 나는 일찍이 화가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