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쯤엔 아빠와 엄마가 갈빗집을 했다. 아빠는 스무 살에 간판을 배웠지만 종종 식당을 개업했다. 내게 간판일을 같이 하자고 하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며 싫다고 했다.
그러면 아빠는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냐, 먹고살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돼.'라고 했다. 어쩌면 아빠는 음식점 사장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우리는 갈비를 좋아해서 지금도 갈비를 자주 먹으러 간다.
학교가 끝나면 가게 앞 놀이터에서 혼자 놀았다. 한 번은 혼자 철봉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남자아이가 난데없이 주먹으로 배를 때리고 가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이사를 많이 다녔다.
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을 때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데 같은 학교 오빠가 내게 돌멩이를 던져서 울면서 집에 간 적이 있다. 아빠랑 엄마는 맞벌이라 언니랑 나는 항상 같이 있었다.
그래서 아빠는 언니에게 동생을 잘 보살피라고 했고, 내게는 언니 말을 잘 들으라고 가르치셨다. 언니에게는 절대 대들면 안 된다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서 우리는 서열이 확실하다.
언니는 울면서 온 나를 보고 당장에 놀이터로 쫒아 가 그 오빠를 한 대 때렸는데, 코피가 났다. '내 동생 건드리지 마.' 오빠는 울면서 집에 갔다. 알고 보니 그 오빠는 언니와 같은 반이었다.
다음날 오빠의 엄마가 학교에 찾아와 언니를 찾았는데 언니가 숨어서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오빠와 언니는 다행히 화해를 했고, 우리는 고등학교 때까지 잘 지냈다.
언니는 여전히 나를 지켜준다. 그때 내게 왜 돌을 던졌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오빠는 그냥이라고만 했다.
갈빗집 근처에 집이 있었는데, 나는 학교가 끝나면 가게로 가서 요리 이모가 해준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고 가끔은 남은 갈비를 먹기도 했다.
그리고 가게에서 시간을 보냈다. 서빙은 못했지만 손님들이 빠져나가면 그릇 정리를 했다. 이모가 해준 된장국은 너무 맛있어서 매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아직도 가끔 기억이 난다. 식당에 손님이 많은 날이면 밤 11시, 12시에 마감을 했는데, 나는 엄마를 기다렸다가 식당 구석에서 함께 이불을 펴고 잠을 잤다. 엄마랑 떨어지기 싫었나 보다.
갈빗집을 정리하고 나서 아빠는 다시 간판일을 했다. 아빠는 사업이 잘 안되면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잠시 떠나 일을 했다. 우리와 같이 있으면 불필요한 돈을 쓰게 된다며 돈을 벌어서 온다고 했다.
그리고 1년 정도 되면 아빠가 돌아왔다. 몇 년 뒤에 작은 닭강정 가게를 개업했다. 아빠는 요리를 배운 적도 없는데 계속 음식점 개업을 시도했던 모습이 지금의 나를 보는 것 같다.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 아빠를 닮았나 보다. 그때 나는 학교가 끝나면 가게로 가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돌렸다. 아파트 맨 위층부터 내려오면서 집집마다 전단지를 붙였다.
어느 날은 친구들이 재미있을 것 같다며 도와줘서 함께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다시 정리를 했고, 족발집으로 재개업을 했다. 하지만 족발집도 정리해야만 했다. 우리는 계속 도전하고 실패했다. 그리고 아빠는 다시 간판일을 했고, 그 뒤로 음식점 장사는 하지 않았다.
아빠가 음식점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아빠가 계속 도전한 것이 있다면 음식점인 것 같다. 아빠의 꿈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아빠의 꿈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