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밀린 일들과 집 문제에 시달리고 나면 나는 나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에 휩싸여 감정의 소나기를 맞이하고는 했다. 이때는 어떤 우산을 들이밀어도, 지붕 아래에서 비를 피한다 한들 옷이 다 젖어버리는 상황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너무 좋아서 매일 끌어안고 잤던 인형을 난데없이 내팽개치고, 매일 듣던 좋아하는 음악이 지겨워져 새 음악을 듣다가 다시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가 결국 적막함을 선택하는, 내가 좋아하던 것들조차 나를 안정시키지 못할 때 말이다. 또 어떤 때는 좋아하니까 지나치지 못하고 사버린, 하지만 금세 후회하며 써보지도 못하고 오밀조밀 서랍장에 차곡차곡 쌓아두고는 힘든 날 문득 생각이 나서 열어보고, 꺼내보며 아직 내게 남은 동심들을 동정하고, 애정 하며 세상의 시선을 잠시 잊어보기도 한다. 그 모든 것들로도 나를 찾지 못했던 때였다.
나는 어딘가 이야기할 곳이 필요했다. 어디를 봐도, 어디를 가도,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초라해보이는 그런 때. 그러던 어느 날 그런 모습을 더 이상 보이기가 싫어서 연락을 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마주칠까 숨어다니기도 했다. 좋지 않은 얼굴을 보이기가 싫었다.
하지만 이런 못난 나를 놓지 않고 기다려준 사람들이 있었다. 어른들이 항상 하는 말이 나이가 같아야만 친구가 아니라는 말을 몇 년 전에야 깨닫게 되었다. 내게는 다양한 나이의 친구들이 있다. 내 머릿속에 친구란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다 하는 동갑내기라는 생각이 있었다.
스무 살 이후로 그런 친구가 없었기에 그 생각에 갇혀있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 헤어졌다. 나는 그 나이에 맞는 문화와 대화들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속에 친구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때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이런 나를 또 떠나겠지 생각 하며 떠난 사람들만을 생각하며 혼자 이별을 하고는 했다. 회사에서도 많은 직원들을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해서 마음을 주는 일에 지칠 때가 있다. 그래서 더 관계에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혼자라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묵묵히 있다가 내가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을 모진 바람이 다 지나간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오랜 사회생활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마음을 깊이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사회생활과 개인적인 관계는 또 다른 세계인 듯 하다. 하지만 이제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고 나 또한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직도 관계에 서툴다.
이런 나의 이야기들을 말할 수가 없어서, 말하고 싶었다. 할 수 없어서 더 하고 싶은 나의 이 반대 기질은 여전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일만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부족하면 이야기할 곳을 찾아 나선다. 나는 어디든 내가 숨겨둔 이야기들을 말할 곳이 필요했다. 내 마음을 쏟아낼 수 있는, 그러다 메모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답장 없을 곳에 편지를 쓰다가, 3년 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감정의 비를 가장 많이 맞은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