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별의 유영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

by 서울경별진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또래 친구에게 고백편지를 쓴 적이 있다. 한창 뛰어놀기 좋아하고 이성에는 관심 없는 나이였다는 걸 그때 알았다면 절대 편지 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고백을 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편지를 썼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바라는 것은 없지만 그저 내 마음이 이렇다고. 그 아이의 서랍에 몰래 두고 나왔는데, 그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읽으며 편지를 들고 복도를 뛰어다녔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어릴 때 나는 정적인 것도 좋아했지만, 활동적으로 노는 것도 좋아해서 여자 친구들보다는 동네 오빠들과 축구를 하거나 공놀이, 학종이 따먹기 놀이 등을 하며 놀았다. 축구를 하면 나는 골키퍼를 담당했다. 열심히 놀다가 해 질 녘이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책도 좋아하고, 뛰어노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성향 같지만 둘 다 내가 가진 것들이다.


솔직하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고.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고. 적극적이기도 하고, 내성적이기도 하고. 중학교 시절 장기자랑 시간이면 친구들과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 나는 당시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좋아해서 음악, 뮤직비디오, 댄스 커버 영상들을 많이 봤다. 그중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음에 드는 댄스 커버 영상을 고르고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과 책상을 밀어두고 교실에서 춤 연습을 했다.


장기자랑 우수상을 받은 후 음악 선생님이 댄스팀을 만들자고 해서 팀 이름을 지은 적도 있다. 그때 지은 팀 이름은 '레드 로즈'이다. 나는 빨간 장미를 좋아하는데,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그때도 좋아했었나 보다. 지금은 다시 하지 못할 일들이다. 지금은 누군가의 앞에 서는 것이 가장 어렵다.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면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웃고, 우는 것이 일상과 함께 공존하는 것처럼 말이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것처럼. 지금은 다시 못할 일들이었기에 어릴 때 해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건 좋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아니요.”라는 말이었다. 나는 내 마음에 너무 충실해서 그저 말 한마디 건넨 것에 행복했나 보다. 무언가 바라는 것 없이 마냥 좋은 것이 익숙해졌던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은 그냥 좋아하는 대로 내버려 뒀던 것 같다.


어릴 때는 현모양처가 되는 게 꿈이었던 때가 있었다. 무엇이든 오래 보고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오래 지켜보고 좋아하고. 하지만 고백편지 사건 이후로 고백은 해본 적이 없다. 좋아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이 익숙한 사람. 그러나 마음은 전하고 싶은. 아직도 나는 그런 사람인가 보다. 좋아하는 건 계속 더 좋아지는데,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건 익숙하지가 않다.


사실 나는 누군가 다가오면 놀라서 도망치는 사람이다. 운전 중에 신호 없이 들어오면 놀라는 것처럼. 그런데 엄마도 그랬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표현하기를 좋아하지만, 내게 다가오는 관계에 있어서는 왠지 모르게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사랑은 어쩌면 오해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서로 모르는 남자와 여자가 먼 거리에 지인들과 있었다고 한다. 남자는 건너편에 있었고, 여자는 이야기하다가 남자 쪽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남자는 그 여자가 자신을 보고 웃은 줄로 알고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렇게 둘은 만나게 되었고, 나중에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여자는 남자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인연이란, 운명이란 참 신기한 것 같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인 것 같다. 서로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내 마음조차도 누군가에게 쉽게 내어줄 수 없듯이 누군가도 그렇겠지.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기다려줄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아니면 포개어 잡은 손의 폭이 꼭 맞는 것처럼 마음의 폭도 꼭 맞는 사람을 알아보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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