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별의 유영

두려움과 맞서야 할 때

by 서울경별진

나는 사람들과 밝게 지내기도 하지만, 예민한 구석이 있다.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다닐 때 나에게만 유독 짜증을 내고 말을 심하게 하는 윗사람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 종종 외증조할머니 손에 맡겨져 자란 때가 있었다. 아가 때 사진을 보면 증조할머니 품에 안겨 있는 사진이 남아있다. 증조할머니는 96세에 하늘로 떠나셨다.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오랜 세월 함께 사셨다.


증조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점심을 드시고 항상 읽던 성경책을 읽으시다가 앉은 채로 편안하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증조할머니는 내가 우리 가족 외에 가장,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 받았던 너무나 포근하고 따뜻한 사랑. 새하얀 백발에 구부러진 허리로 항상 웃으시며 안아주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할머니처럼 새하얀 백발이신데, 아주 멋있으시다. 지금도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아르바이트 휴식시간에 이런 대화를 했었다. 그 해에 영화관 사람들의 가족들 몇 분이 하늘로 떠났다. 내게도 그 질문이 왔고, 증조할머니의 나이를 물었다. 96세이셨다고 말을 건넨 순간, 내게 돌아온 말은 '돌아가실 분 돌아가셨네.'라는 말이었다. 나는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다. 나는 말에 예민한 사람이다. 나름의 소신이 있었기에 내 기준에 예의를 넘는 것을 못 봤다.


도를 지나친 장난과 말들을 들으면 참지 못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나중에 친구들이 해주는 말을 듣고 알았다. 나는 예의에 대해서는 한번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돌이키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는 달랐다. 먹고살려면 내가 원치 않아도 참아야만 했다. 사회는 내 이야기와 의견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뿐이었고, 나는 들어야만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구회사에 다닌 뒤로 대학이라는 걸림돌이 생겼고, 졸업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달린 꼬리표들에 위축되었다. 스스로 위축된 내 모습은 누가 봐도 볼품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 사람은 내게 심한 말을 하고 막대했지만 나는 일이 좋았고, 다른 일은 다닐 생각이 없었기에 꾹 참았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영화관이 조용했는데 그 사람의 발소리만 나도 겁이 나서 상영관으로 숨었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그 사람이 나타나면 내게 신호를 보냈다. 누구도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어떤 날은 못된 말이 듣기 힘들어 화장실에 숨어 있던 적도 있다.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울기도 했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아닌 건 아닌 거라 말하던 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회에서는 내가 있는 위치에 따라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 나는 어느 날 생각했다.


일은 그만둘 수가 없으니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내가 먼저 말을 걸고, 좋은 말을 해주고, 귀찮은 일은 내가 나서서 해주고, 간식도 사면 같이 먹었다. 그렇게 한, 두 달을 하고 나니 나쁜 말들의 횟수가 줄었고, 관계가 나아졌다. 2년 동안 힘들었던 관계가 몇 달 만에 변화되었다.


지금은 의류 회사 엠디로 일을 하고 있지만, 입사는 고객센터부터 시작했다. 취업이 어려웠던 나는 어떤 부서든 이력서를 내야 했다. 3년 동안은 전화와 게시판 등의 업무를 했고, 4년 차부터 우연히 부서이동이 되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엠디를 하게 되었다. 나는 영화관과 백화점에서 고객 응대를 했었기 때문에 조금은 자신 있게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복잡한 구조의 업무와 생각지도 못한 질문, 쏟아지는 클레임들에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신입이었던 나는 부족한 업무 능력으로 매서운 말들과 폭언, 욕설들을 직접 내 귀로 들어야 했다. 회사와 고객의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생겼다. 마치 악플들이 귓속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잠깐의 통화로 나를 다 안다는 듯이 가족부터 내 인생까지 바닥으로 끌고 내려가 내동댕이 쳤다.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다. 죄송하다고 해도 이해받을 수 없었다. 연예인들이 악플을 보면 어떤 심정일지 이해가 됐다.


누구도 나를 지켜줄 수 없었다.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정작 나를 지켜줄 사람은 없었다. 말에 예민한 나라서 여러 말들을 들으며 마음과 생각이 많이 무너졌다. 하지만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참고, 버텨야 했다. 내게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야 했다.


마음에 들어온 나쁜 말들을 해결하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모두 내 몫이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털어낼 수도 있지만, 결국 방안에 혼자 남는 것은 나였기 때문에 온전히 혼자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단단하게 나를 정비해간다.


어떤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살아있는 것들은 언제나 적이 있기 마련이지.' 나는 영화관에서 일할 때보다 더 많이 울었었다. 나를 밉다고 하는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야 했고, 해피엔딩을 만들어내야 했다. 다른 일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사람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놓아버리기 싫었다.


책임이라는 것은 나를 이렇게 바꿔놓았다. 나는 아빠를 참았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관계도 참아냈던 것 같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참는 법과 관계를 풀어내는 법들을 배웠다. 궁지에 몰려 이겨낼 수 없을 때는 피하지 말고 오히려 마주해야 한다는 법을 깨달았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들은 언제나 적이 있기 마련이라는 구절처럼 아직도 나를 어렵게 하는 문제들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나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열심히 부딪히고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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