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별의 유영

나도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by 서울경별진

아빠, 엄마 세대에 어린 시절은 도시락 이야기가 빠지지 않지만, 급식을 먹으며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엄마의 도시락을 8년 전부터 먹기 시작했다. 교복회사나 직업학교 다닐 때도 도시락을 싸기는 했지만 어쩌다 한 번이었다. 아빠는 은근히 입 맛이 까다로워서 식당밥을 잘 먹지 않으셨다.


아빠는 삼시 세 끼를 집에서 드셨다. 몇 년 전 공장 살림집을 정리하고 처음으로 집이라는 곳에서 살 때는 점심은 밖에서 드시고 아침, 저녁은 꼭 집에서 드셨다. 일이 늦게 끝나서 밤 11시가 돼도 집에서 밥을 드셨다. 집에 도착하기 10분, 15분 전에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밥을 준비해두라고 하셨다. 엄마는 투덜대기는 하셨지만 늦은 시간에도 항상 밥을 해주셨다. 우리 집 밥통은 쉬는 날이 없었다. 아빠는 먹는 것을 좋아해서 밥 먹고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아이스크림에 밤새 과자까지 드셔야 잠이 드셨다. 배가 불러야 잠이 온다고 하셨다.


하루 종일 움직이는 일이라 허기를 많이 느끼셨다. 어느 날은 밥도 못 먹고 하루 종일 일을 한 후에 배가 너무 고파서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버거 다섯 개를 드셨다고 하시며, 직원이 놀라는 표정을 봤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혼자 앉아 허겁지겁 드셨을 아빠가 상상돼서 괜스레 눈물이 난다.


나는 8년째 매일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다닌다. 금요일은 직원들과 식당에서 함께 밥을 사 먹는다. 엄마의 도시락 반찬은 아주 다양하고, 양도 푸짐하다. 양이 너무 많아서 항상 조금씩 남긴다. 엄마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아빠에게도 이런저런 요리를 자주 해주셨다.


어느 날은 내가 지나가는 말로 '감자튀김 먹고 싶다.'라고 했는데, 다음날 아침 나를 깨우며 말했다. '감자튀김 먹어, 먹고 싶다며.' 접시에 는 산처럼 쌓인 두툼하고 노릇한 감자튀김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하셨다. 우리가 아가였을 때도, 학창 시절에도 맞벌이로 일하시고 아직도 일을 하신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일 끝나고 집에 오면 항상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었는데, 나는 100원, 500원씩 용돈을 받으며 주물러 드렸다. 그때 엄마의 힘듦을 일찍 알았더라면 용돈은 받지 않았을 텐데. 나는 조금 더 자라서야 엄마를 위해 부자가 되고 싶었다.


엄마는 항상 6시 30분에 일어나서 밥을 해주신다. 도시락을 안 싸줘도 된다고 해도 일하려면 집밥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며 꼭 싸주신다. 아빠가 계셨을 때는 새벽에 깨어 부엌으로 가면 아빠랑 엄마가 아침을 맛있게 드시고 계셨다. 아빠는 자고 있다가도 '밥 다됐어'라고 하면 일어나서 식탁으로 오셨다.


그렇게 항상 끼니를 챙기고 함께 밥을 먹었기에 아빠가 떠난 후 허전함을 많이 느끼셨다. 어느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누군가 함께 있었단 느낌.' 누군가가 곁에 있다가 없는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언니와 나는 엄마에게 아빠가 하던 것처럼 밥을 해달라고 했다. 그러면 엄마는 퇴근길에 장을 봐오고 밥을 하며 우리를 기다리신다. 한 달에 한번 할아버지에게 가는 날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유튜브로 반찬 만드는 영상을 보며 수첩에 재료와 레시피를 적으셨다.


할아버지 집에 가기 전날이면 밤새 반찬을 만들어 차곡차곡 담아놨다. 이제 그 즐거움도 사라진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잘 먹어야 되는데, 나는 아빠처럼 먹는 즐거움을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내가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하면 엄마는 내게 '그럼, 우리 딸이 나보다 더 잘하지. 우리 딸이 엄마보다 더 잘할 거야.'라고 하셨다.


나도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나도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랑하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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