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별의 유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by 서울경별진

이제 나는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렵게 구했던 집이 넘어가고 다시 길로 나가야 될 상황에서도 고집부리며 하고 싶은 일을 구하며 다녔다. 20대 후반에 나는 여러 가지 불투명한 미래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도 못하고 끝나면 어떡하나, 가족들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 무거운 고민을 하며 당장 집을 잃을 불안감에 밤마다 잠도 못 자는 가난한 취준생이었다. 무


엇하나 또래 친구들에 비해 제대로 된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의 시선에 혼자 초조했다. 결국 저 아이는, 결국 고졸이라서,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직장을 얻을 나이와 시간을 놓치면 영영 내게 기회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때 나는 그랬다. 친구들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서 악착같이 매달렸다. 보통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매일 밤 이불속에서 울며 이력서를 넣었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에 아직도 다니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좋은 직장이 있어도 좋은 가방을 들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누군가보다 더 나아지려는 노력은 나 자신을 위해서만 해야 성장할 수 있다.


나의 욕심은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도 좋아보이는 직장에 들어가고 싶었다. 보이기 위한 것은 조금의 도움은 될 수 있지만 밤이 되면 해결되지 않는 공허함에 사무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만족하면서도, 남들보다 나아보인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다고 하면 드라마에 나오는 악역만을 생각하고는 하는데, 나의 개념은 그런 것이 아닌 똑똑한 소비생활을 하는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빼앗기는 삶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나눠주는 것과 빼앗기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스무 살에 재테크 책을 읽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 배밭이 바로 옆에 있는 과수원 쪽방집에서 살았던 때였다. 이사를 많이 다닌 탓에 집에 대한 기억이 많다. 언니와 나는 아빠 엄마 결혼기념일에 집에 있는 삼겹살을 구워 저녁밥상을 차려드렸다. 그때는 언니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단한 집안일을 했다.


그리고 가끔 무료 공부방에 가서 공부를 하고는 했다. 선생님은 공부하다가 중간에 꼭 간식을 해주셨는데 떡볶이를 자주 해주셨다. 나는 어쩌면 그 떡볶이를 먹으러 갔는지도 모른다.


사실 가난한 줄 모르고 살았다.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 내가 살아온 환경이 달랐다. 삶을 돌아보니 그랬다. 아빠가 아프시고 불어난 빚들이 감당 안될 때쯤에야 우리가 재정을 맡을 수 있었다. 아빠의 경제생활을 들여다보니 엉망이었다. 나는 여태 써보지도 못한 허공 같은 돈들을 갚았던 것이다. 거기서 오는 허망한 마음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아빠의 가부장적이고 극단적인 성격 탓에 그동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주변에 여러 도움과 조언을 받았고, 일을 하며 빚을 갚아 나갔다.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끝이 보이고 끝이 났다. 우리를 매섭게 쫒아왔던 그 모든 것들이 끝났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것들도 마음만 먹으면 모두 끝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때도 있었다. 밤마다 문을 부술듯한 문소리에 겁도 먹어보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청해도 보았다.


그때는 집보다 밖에서 자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모르는 사람의 시선에 괜스레 두려웠다. 다 잃고 난 후에야 오는 깨달음과는 또 다른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다시 시작했다. 인생은 살아있는 한 계속된다. 살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들도 하게 되는 힘이 생긴다. 나의 청개구리 근성은 이런 데서 일어났다. 죽을 것 같을 때 살고 싶은 그것과 같다.


지금의 나는 친구들보다 나아 보이고 싶은 마음도, 누군가에게 나를 자랑할 마음도 없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고, 가족에게 그리고 내가 후원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빠가 했던 간판 일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잃어보기도 하고 얻어도 보았다. 그래서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내게 과분한 삶이 주어진다 해도 나의 시절을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글로 적는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안정된 사람. 하지만 계속해서 꿈꾸고 나아가는 사람.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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