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별의 유영

좋아하는 샤워 물의 온도

의식의 흐름이 쓴 글

by 서울경별진

글을 쓸때는 내가 좋아하는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을 듣는다. 부드러운 목소리나 피아노 반주가 흐르는 음악이면 더 좋다. 글을 다쓰고 나면 글이 음악과 어울리는지 몇번이고 다시 읽으며 글을 정돈한다. 퇴고라는 말이 더 멋져 보이지만 아직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다. 내 글은 추운 겨울날 벽난로 옆 소파에 앉아 담요를 덮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읽기 좋은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들과 어울리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탄다. 그래서 따뜻한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난로, 목도리, 장갑, 코트, 니트, 따뜻한 물. 따뜻한 이라는 단어도 좋다. 도톰한 털 잠옷에 이불을 두 개나 덮고 잔다. 여름에도 긴팔 옷을 즐겨 입는다. 피부가 얇아서 햇빛을 받으면 알레르기가 일어난다. 회사에서 옷 먼지 때문에 새로운 피부 알레르기가 생겼다. 그래서 연고를 달고 산다. 몸을 감싸주는 옷을 좋아한다. 겹겹이 입는 것을 좋아한다.


샤워 물은 항상 따뜻한 물이다. 아빠는 겨울에도 찬물로 씻고, 나는 여름에도 따뜻한 물로 씻는다. 내가 좋아하는 샤워 물의 온도는 따뜻한 이다. 아빠랑 나는 잘 안 맞는다. 생일이 겨울이라 생일 선물로 목도리나 장갑 선물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기억나는 건 아빠가 사줬던 오렌지색과 파란색 실이 섞인 짜임이 독특한 목도리다. 너무 튀어서 몇 번 해보지는 못했지만 그 목도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저런 생각에 정리되지 않은 글들을 메모장에 짧게 적어두기 바빴는데, 지금은 문단 형태로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좋은 소재거리인지 확신은 없다. 나는 사실 조금 계획적이다. 하지만 완벽하지가 않다. 여전히 틀어지고 실수한다. 수정하고 수정하다 보면 결국에 끝은 온다. 하루가 걸릴 수도, 일주일이 걸릴 수도 있다.


회사일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시도하고, 끝을 내고야 마는데,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계속 글을 써본다. 계획적인 걸 좋아해서 즉흥적인 건 낯설다. 갑자기 일어나는 일, 갑자기. 갑자기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내게는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좋지 않은 일이 많았다. 그래서 겁이 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마저 깨 보려고 한다. 무작정 보러 갔던 바닷가가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는 걸 믿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내 계획은 완벽했지만 그건 내 계획일 뿐일 때가 많다. 그래서 무계획에도 내 마음을 조금 나눠주기로 해본다.


유난히 고단하거나, 유난히 서러운 날이면 글이 쓰고 싶어 진다. 그리고 더 잘 써진다. 억지로 고독을 찾지 않아도 고독이 내게 온다. 그리고 나는 고독을 마주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하지만 말로 쏟아내지 않는다. 쓰고 싶은 문장이 많아진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유난히 고단하고, 유난히 서러운 날이다. 하지만 주제를 정할 수가 없다. 편지를 쓰다가도 지워버린다. 내가 뭘 하는 걸까 싶어 진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풀어보려 장문의 메시지를 쓰다가도 소용없다는 마음이 밀려와 이내 그만둔다. 고단한데도 잠이 잘 들지 않는다.


가끔 그런 밤이 있다. 일주일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배는 고픈데 식욕이 없다. 피곤한데 깊은 잠이 들지 않는다. 꿈을 꾸면 꿈인 것을 안다. 잠 못 드는 새벽 1시.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잠이 들락 말락 하지만 잠들기 싫은 그런 시간. 하지만 깊은 잠을 자고 싶다. 예쁜 꿈도 꾸고 싶다.


1시다. 잠 못 드는 새벽 1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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