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왜 울어, 울지 마.'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울음을 참는 법을 배워서인지 감정을 숨기는 법까지 배웠던 것 같다. 슬프고, 아프고, 힘들 때면 눈물은 흐르기 마련이다. 가끔은 너무 좋아서 흘릴 때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기쁨의 눈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슬펐던 기억이 섞여있는지 모른다.
그런 감정이 건드려지는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사람들마다 감정이 일어나는 키가 다르겠지만 나는 말로 인하여 그런 감정이 깨어나고는 했다. 좋았던 말보다 나를 아프게 했던 말들은 몇십 년이 지나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좋았던 기억들을 글로 써보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세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아프게 했던 일들은 여전히 기억이 생생하다.
어릴 때 울었던 기억은 몇 번 없다. 고등학교 때는 시험 점수가 낮다는 이유로 많이 맞았다. 선생님들은 항상 커트라인을 정하고 그 점수 아래가 되면 매를 들었다. 나는 자신 없는 몇몇 과목들이 커트라인보다 조금씩 못 미쳐서 자주 맞았다. 그러면 체육복 바지를 몰래 입고는 했다.
나름 친구들과 야자와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했지만 시험만 보면 친구들보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필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가끔 내 필기 공책을 빌려간 친구들이 좋은 점수를 받고는 했는데, 내 시험 점수를 보고 내게 와서 미안하다고 할 때도 있었다.
사실 아빠가 항상 내게 공부할 머리가 아니라고 하면서 공부에 큰 부담을 주지 않았기에 나는 내 점수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저 공부한 만큼 못 나왔네. 하고 말았다. 나름 긍정적이었다.
나는 수학을 정말 못했는데, 어떤 공식이 있는 것들은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문과가 더 잘 맞는 건 분명한 것 같다. 내가 학교에서 제일 많이 울었던 기억은 수학 쪽지 시험시간이었다. 중학교 수학 선생님은 성적은 좋지 않지만 열심히 하는 내게 항상 격려를 해주시곤 했는데, 고등학교는 달랐다. 철저히 시험 점수로 평가받아야만 했다.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은 무척 무서웠다.
가뜩이나 수학 과목은 제일 못하는데 선생님마저 날 한심하게 보는 게 느껴져서 더 주눅이 들었다.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했는데 하필이면 맨 앞자리에 앉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항상 들고 다니시던 30cm 정도 되는 나무 매로 내 머리를 세게 때리셨다. 소리가 크게 나서 친구들이 나를 다 쳐다봤다. 나는 아빠나 엄마한테 맞아 본 적이 없다.
시험 점수가 안 나와서 매를 맞는 것은 약속이었기 때문에 억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내게 너무 억울한 일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선생님을 쳐다봤는데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못 풀면 나중에 자식들 어떻게 가르칠래, 부끄럽지도 않냐? 네 자식들이 불쌍하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엉엉 울었다. 교실은 더 조용해졌다. 눈물이 그냥 막 쏟아졌다. 나는 태어나지도 않은 내 자식들이 벌써부터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게 너무 화가 났다.
나는 아이들에게 수학이 인생에 필요할 수는 있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알려줄 것이다. 울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왜 우냐.'라고 했다. 나는 결국 한 문제도 풀지 못하고 쉬는 시간까지 울었다.
차라리 내가 공부를 안 했었다면 덜 억울했겠지만, 나는 내가 공부를 해도 잘 해내지 못하는 영역이라는 것을 알았고, 노력도 했지만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내 자신도 잘 안 되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가지고 있는데, 30명이 넘는 친구들 앞에서 들은 그 말의 무게는 내가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말이었다. 나는 그래서 더 수학과 친해지기 어려웠던 것 같다. 친구들은 나를 달래주었지만 어린 나에게 그 말은 너무 아팠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고 보니, 그런 말들은 너무 쉽게 서로에게 전해지고 더한 말들이 오가는 것들을 보면서 말로 인해 사람들이 마음의 병이 생기고 아프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말을 조심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도 완전하지 않은 존재라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문득 하루를 돌아보다가 어떤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면 미안하다고 연락을 남기고는 한다.
어느 날은 내가 기분이 안 좋은 날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날따라 우리 가족은 외식을 했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울상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는 그런 내게 '밥 안 먹을 거면 나가.'라고 했다.
나는 슬픈 기분에, 아빠의 말까지 들으니 더 슬퍼져서 식당 밖에 나가 울었다. 아무도 내 슬픔에, 내게 관심이 없는 듯한 그런 기분. 지금은 아빠를 용서했지만, 아빠의 그런 말들이 쌓여서 아빠를 더 오래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아빠의 그런 말들 때문에 내가 더 말에 예민해진 것 같다. 나는 몇 년 전 언니와 이야기하다가 아빠가 내게 했던 말들이 얼마나 내게 상처였는지에 대해 말하면서 울었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에 얼마나 크게 박혀있었는지.
세상은 내게 아픈 말을 계속하는데, 울어서도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캄캄한 방이 하나 생겼던 것 같다. 아픈 말을 숨겨놓고 눈물을 숨겨두었던 방. 집의 일, 회사 일 때문에 힘들어 회사에서 몰래 울고 있으면 누군가 말했다. '회사에서는 울지 마라.' '네가 약해져서 울면 어떡해.' 나는 너무 아픈데 울어서도 안됐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속으로 운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나는 알 것 같다.
나는 눈물이 많다. 슬플 때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에도 눈물을 잘 흘리는 편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고 웃어야 한다는 법칙 아닌 법칙이 있어서 꾹 참는 편이다. 하지만 한 번씩 숨겨놨던 캄캄한 내 방에 눈물이 꽉 차면 문이 열릴 때가 있다. 그러면 그 눈물들이 와장창 쏟아진다.
나는 웃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잘 울었으면 좋겠다. 마음에 있는 것들이 풀어지도록 눈물이 멈출 때까지 엉엉 소리 내어 울었으면 좋겠다.
살아가면서는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는데 우리는 웃는 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우는 일에는 너무 무심한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의 병이 잘 치유되지 않는 건 아닐까 싶다. 잘 웃는 것만큼, 잘 우는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살리는 일인 것 같다. 감정의 기복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항상 울지 말라는 말만 듣고 성장했지만, 마음에 눈물이 꽉 차 있는데 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펑펑 울어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울어, 울어도 돼. 그래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