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좋다

by 서울경별진

스무 살, 고3 때부터 다녔던 가구회사를 퇴사하고 첫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고등학교 취업반이었던 나는 이력서 쓰는 방법도 학교에서 배웠다. 가구회사는 학교 추천으로 입사했지만, 아르바이트는 내가 처음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이력서도 넣은 첫 일터였다.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은 언제나 설렐 것이다. 나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거리인 새로 생긴 영화관에 입사했다. 그 영화관은 개인이 운영하는 영화관이었다. 그 당시 내게 영화는 조금 생소했다. 그다지 좋아하는 취미는 아니었다. 아빠는 중국 무협 영화를 좋아해서 어릴 때 중국 영화 테이프를 빌려와 보시곤 했다. 내가 중, 고등학교 때는 만화와 비디오 대여점이 인기였어서 동네에 한 두 군데는 꼭 있었다. 언니와 나는 주말이 되면 아침부터 만화책을 빌리러 가고, 아빠는 퇴근 후 집에 오는 길에 검은 비닐봉지에 비디오테이프를 넣어가지고 왔다. 볼거리가 없었던 90년대에는 그게 여가 생활이었던 것 같다. 아빠가 보고 난 비디오는 우리가 한 번 더 보고 반납했다. 집 근처에 영화관이 없어서 1시간 정도 옆동네까지 가야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영화관 아르바이트는 내게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처음으로 유니폼도 입어봤다.

내성적이고 말도 잘 못하던 내게는 도전 같은 일이었다. 나는 목소리가 작고 얇아서 다른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목소리를 가졌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 내가 매일 많은 손님들과 대화를 하고, 큰 소리로 말을 해야 했다. 교육을 받을 때 크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친절하게 대하는 법, 웃는 법, 인사하는 법, 영화관 내부를 청소도 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하다 보니 점점 적응하고 나아졌다. 영화관 일은 재미있었다. 어쩌다 보니 아르바이트를 3년이나 했다. 처음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입, 퇴장 안내로 시작하고, 이후에는 매표소 업무도 배워서 인원이 부족한 곳이 있으면 파트를 계속 바꿔가며 일을 했다. 매표소는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들을 가까이에서 마주해야 해서 어려운 일이 많다. 가장 많은 트러블이 나는 상황은 등급 영화였다. 등급에 맞지 않은 손님들이 표를 끊으려 할 때 가장 많은 클레임이 생겼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편의점에 서 담배를 몰래 사려는 것과 같은 상황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처음에는 분별하기 힘들었지만 여러 번 경험을 하게 되니 한 번에 알아볼 수 있게 됐다. 손님들의 행동들을 살펴보면 거짓말을 하는지, 진짜인지 알 수가 있었다.

입, 퇴장 안내를 할 때는 표 확인과 함께 입장관 안내를 하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영상이 잘 나오는지, 온도는 괜찮은지 체크를 한다. 영화 중간에도 들어가서 체크하고, 끝나기 10분 전에는 미리 들어가서 손님들의 퇴장을 돕는다. 손님들이 퇴장하고 나면 앉은자리의 의자를 정리하고 청소를 한다. 6시간 동안 여러 편의 상영관을 관리한다. 영화관 일을 하면서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 그때 아르바이트생은 하루 1편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목요일마다 새로운 영화들이 개봉했다. 3년 동안 개봉 영화들을 매일 1편씩 봤다. 너무 재미있었던 영화는 두세 번씩 또 봤다. 그때 영화는 친구나 가족들과 특별한 날 시간을 내서 어쩌다 한 번씩 보는 행사 같은 일이었는데, 매일 영화를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내가 여러번 봐도 지루하지 않았던 영화는 '맘마미아, 과속스캔들, 라디오스타' 였다. 영화관에서만 3-4번을 봤다. 혼자 팝콘을 사서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를 좋아했던 아빠도 영화를 보러 자주 왔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친구들과 멀어진 나는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과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갔다. 물론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일을 다니는 동안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영사실은 아주 가끔 한 번씩 구경을 갔는데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무척 시끄러워서 오래 있기 힘들었다. 영사기사님들은 하루 종일 영사기를 돌리고 계셨다. 내가 퇴사하기 전에는 디지털 영사기로 바뀌어서 조금 더 수월해졌지만 말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을 좋아하는데, 그 영화를 보면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가끔 난다.

나는 그 이후로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 주말이면 두, 세편의 영화를 본다. 책만큼이나 영화도 좋아한다. 이제는 영화도 좋아하는 취향이 확고해져서 비슷한 영화만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몇 편 있는데 앞서 적은 시네마 천국 외에 '가위손, 오렌지 카운티, 노팅힐, 로맨틱 홀리데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그녀, 당신이 잠든 사이에,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타이타닉, 이터널 선샤인,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노트북, 러브레터, 청춘스케치, 화양연화, 비포 선라이즈..'등등 좋아하는 영화가 이렇게나 많다. 살아갈수록 좋아하는 것들도, 사랑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나는 조금 빈티지한 오래된 사랑 영화를 좋아한다. 나는 느껴보지 못한 그 분위기, 솔직함, 오래된 물건들과 그 감성들. 그러면서 간간히 삶에게 던지는 멋진 대사들까지. 여러 번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스무 살 첫 아르바이트의 기억이 벌써 13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니. 내게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해 준 그 기억들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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