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세계여행, 퇴사하고 사업, 퇴사하고 귀농… 몇 년 전 ’퇴사하고‘가 붙는 회사원의 제 2의 삶이 유행처럼 트렌드가 됐던 때를 기억한다. 나 역시 관심이 많아 여기저기 기웃 거렸던 때가 있었다. 회계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다녀온 부부의 토크 세션(퇴사하고 세계여행)도 다녀 오고, 퇴사한 자영업자들의 이야기 같은 책들도 사서 읽고, 글을 써놓기도 하고 그랬었다.
SNS와 미디어는 퇴사하고 무언가를 근사하게 이뤄낸 사람들을 주로 비춘다. 한 회사를 오래 꾸준히 다니는 사람에 대한 동경 보다는, 다니던 회사를 과감하게 그만 둔 자의 선택에 대한 동경이 있는 시대다.
이직이 아닌 퇴사로 새 삶을 일구는 동료들을 지켜볼 때는 남아있는 자로서 박탈감이 들 때도 있었다. 저들은 진짜 자기 삶을 찾으러 간 자들 같고 난 그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쳇바퀴를 굴리는 팍팍한 회사원 같아 보여서.
나 조차도 회사 밖의 내 삶을 상상하는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도 “됐다. 그냥 회사나 다녀야지“라는 결론에 닿는 문장부터가, 회사가 내 궁극의 삶의 목표나 방향 같은 것들이 아닌 그저 다른 모험을 할 수 없기에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기본 옵션 같은 것 같아서. 더욱이 후지게 느껴졌을 때도 분명 있었다.
언젠가부터 학교에 성실히 다녀 얻은 성과인 개근상이 자랑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개근 거지’, ‘출석 거지’라는 별명이 따라 붙는다는 기괴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세상이 언제 이렇게 이상하게 변했나 싶다. 그 저변에는 ‘한자리에서의 꾸준함’을 뛰어 넘는 다른 무언가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된 거겠지.
회사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 스타트업에서 경력개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 회사에서의 근속연수에 대해 응답자의 87%가 평균적으로 3년 내외가 가장 적절하다고 응답했다 한다. 그 이유로는 경력 개발, 연봉 상승, 커리어 발전 등의 요인이 있을 테고. 이제는 한 회사에 오래 근속을 하는 것이, 연봉 상승에도, 커리어 개발에도 딱히 큰 도움이 안 되는 게 당연해진 시대다.
과거엔 개근, 근속 이런 것들이 예전에는 성실함과 꾸준함의 척도였다면, 세상이 변한 요즘에는, 제자리에 안주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내 생각의 뿌리에서 오는 게 아닌, 외부 환경에서 오는 시선, 남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구린 생각이다. 신기하게도 회사에서의 내 효능감 과는 별개로 1년에 한 두 번씩은 꼭 멀쩡한 회사를 그만 두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막연한 상상과 허황된 로망, 망상에 빠지곤 했다. 회사가 싫어서가 아니라 회사원이 아닌 삶에 대한 호기심, 궁금증이었다.
그럼 이 호기심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정말로 내 인생에 대한 목표 의식일까, 뾰족한 방향을 설정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냥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회사원이 멋있어 보이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까. 회사원이 된 지 만으로 10년이 넘은 지금. 부끄럽게도 아직도 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매년 그 순간이 올때는 당장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처럼 깊이 빠져 생각을 하다가도, 다음날이 되면 그저 또 하룻밤 충동이었구나 싶게 일상을 치열하게 사는 나를 보면서, 진짜 내 마음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아직도 그 생각의 첫 시작이 어디인지, 내 고민의 농도는 얼마나 짙었던 것인지, 그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충동의 생각 중 하나인 건지. 내가 그 동안 해오던 고민들을 활자로 풀어나가며 나조차도 한 번도 꺼내어 펼쳐보지 않았던 생각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답을 찾기 위함은 아니다. 몇 글자 쓴다고 해서 당장 뾰족한 답을 찾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 흐르는 시간들이 방향 없이 가는 것은 피하고 싶어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회사원들이 한둘이라도 있다면 같이 나누고 공감하고 싶어서. 주제를 뾰족히 정해놓고 몇 자 써보는 이 시간들이 당연히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나 생각의 끝이나 뭐 이런 거창한 것이 절대 안 될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안다. 그저 흩어진 내 생각들이 한 두개의 불렛 포인트로 집약되는 정리의 기회가 되길 기대하며, 누군가에겐 또 새로운 공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