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플라워

다 하고 더 해서 향기가 아름다운 꽃이여

by 거울 속 다른 나


“8888일 동안 함께하여 고맙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행복합시다.”


세어 보진 않았지만 100송이는 안 되는 것 같다.

핑크색 장미 꽃다발을 받는 순간

남편 사랑의 향기가 진하게 전해졌다.

아직도 날 향한 사랑이 식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기쁘다.

“먹지도 못할 거 며칠 못 갈 건데 아깝게 돈으로 주지”

꽃 대신 오만 원권으로 만들어진 돈다발 이미지도 함께 보여준다.

“이런 거 알았지?”

하며 행복에 겨워 남편을 타박해 본다.

아까우니까 드라이플라워를 만들어야겠다.

정성과 사랑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버리지도 못한다.


잊고 지내던 어느 날인가

꽃 잎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 잎씩 주워 버릴 때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버리기만 귀찮게 왜 줘가지고 앞으로는 돈으로 줘

난 실용적인 걸 좋아하니까”


정성과 사랑이 담긴 꽃은 유통기한이 끝나버리고

색상은 사라지고 흑백색으로 변해

이 세상 물건이 아닌 듯하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면서 미련 없이 버린다.

마지막으로 다시 돈다발을 강조하며 타박은 끝이 났다.


그날 이후로 아직까지 꽃다발은 받아보지 못했다.

대신 돈으로 입금받고 있다.


“얼마면 되겠어?”

“많이 주면 좋지”


꽃다발 1


결혼 전 일이다.

감기에 걸렸다. 남편이 직장으로 잠시 왔다 갔다.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방금 나간 남편이었다.

냉장고 안에 감기약을 넣어 두었다며 잘 챙겨 먹으라고 한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감기약과 꽃다발이 함께 들어 있었다.

너무 감동이었다.


꽃다발 2


결혼 전 일이다.

아무래도 임신인 것 같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산부인과로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자궁과 태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내 자궁도 처음 보게 되었고 보이지 않는 태아도 처음이었다.

그 조그만 생명이 느껴지면서 조심히 배드에서 내려왔다.

남편과 난 말없이 걸었다.

남편이 갑자기 사라졌다.

엄청 큰 꽃다발을 들고 와 결혼하자고 했다.

너무 감동이었다.


꽃다발 3


직장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 발걸음은 무겁다.

하루를 견뎌낸 무게와 9개월 만삭에 배도 한 몫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뭔가 낯설다.

안방문을 닫고 출근한 것 같은데

살짝 열려있고 옅은 불빛이 보인다.

가슴이 철렁하며 ”도~도둑“비명이 나오려는 순간

“나야 “ ,”생일 축하해”

스물다섯 번째 남편과 함께한 생일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렇게 감동과 눈물을 주던 꽃다발이

어쩌다 실용성만 생각하게 됐을까?

나의 변천사를 떠올려본다.

그래도 지금은 실용적인 게 좋다.


이제부턴

꽃차를 선물해 달라고 말해야겠다.

다하고 더해서 향기가 아름다운 꽃차

꼭 남편의 향기가 나는 것 같다.

끝까지 피어 마지막 향기까지 나에게 전해주고

마르고 말라도 다시 녹여

더 진한 향기를 전해주는

나의 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