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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섭 Feb 05. 2022

00. 두 번의 실패, 그럼에도 창업이 끌리는 이유

끊임없이 타석에 올라 방망이를 휘두르다보면 

두 번의 창업 실패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두 번 창업했고, 두 번 말아먹었다. 

빠른 실패 테크 


첫 번째 사업은 국내 미술대학교의 졸업작품전을 모아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웹사이트였다. 주변에 미대생 친구들이 꽤 있었는데, 열심히 준비해서 만든 졸업작품이 그냥 버려지다시피 하는 게 아쉬웠다. 해외 갤러리들에게 보여주면 꽤 재밌겠다 싶었다. 알음알음 미대 졸업준비위원회들을 만났고, 200명 가까운 학생들의 졸업작품을 모았다. 홍대 근처에서 오프라인 전시도 한 번 진행했다. 


즐겁고 의미있는 일이었지만,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지 몰랐다. '가치 있는 일을 하니 돈은 따라올 것'이라고 회피하다가, 1년 동안 돈 한 푼 벌지 못했다. 돈은 벌지 못하면서 '가치가 중요하다'고 외치는 나를 두고 친구들은 가치밖에 모르는 '가치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사업계획서의 일부. 열심히 개발한 웹페이지는 고이 묻어뒀다..  


두 번째 사업은 '실제 유학생들과 유학희망자들을 연결시켜주는 플랫폼'이었다. 당시 나는 홍콩 바로 위에 있는 중국 심천 지역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었다.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 중국어를 한 마디도 구사하지 못했는데, 이 상태로 학교 수속절차를 밟으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속한 대학교의 등록절차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브런치에 올렸다.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현지에서 함께 공부하는 유학원'의 컨셉으로 '리앤동 유학원'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개설해 포스팅을 시작했다.    


'가치충'이라는 타이틀을 벗고자 열심히 돈을 벌어보려 했다. 기존 유학원들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활용해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나는 보다 합리적인 가격대에 포지셔닝했고, 적지 않은 사람들로 부터 문의를 받았다. 20건 정도의 유학 상담을 진행했고, 다들 만족해했다. 고객들의 입금이 코 앞에 온 순간,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고객들의 입금보다 한 발짝 빨랐다. 모든 유학건들이 취소됐고, 나는 다시 한 번 돈 한 푼 쥐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유학원 홍보를 위해 만들었던 이미지. 신뢰감과 젊은 분위기를 동시에 잡았다. 코로나에게 잡히기 전까지는..

  

두 번의 창업을 마무리 한 후, 한국에 돌아와 직장을 찾아 일을 시작했다. 대기업 보다는 스타트업이 나의 성향에 맞다고 생각했고, 스타트업을 위주로 일을 구했다. 2-3명 규모의 아주 작은 스타트업 미디어에서 짧게  일했고, 물류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10명 규모 스타트업에서 사업개발 매니저로 6개월간 일했다. 그리고 작년 초, 좀 더 큰 조직을 경험하고자 현재 회사로 이직을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꽤 큰 규모의 에듀테크 스타트업으로, MAU(Monthly Active User) 1000만을 넘는 앱을 전 세계에 서비스하고 있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해 입사 당시 120명이었던 직원이 현재는 3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직장생활이 창업에 비해 갖고 있는 장점은 분명하다. 안정적으로 월급이 나온다는 점 외에도 다양한 직무의 전문가들과 협업할 수 있다는 점, 규모있는 조직의 경우 체계적으로 업무를 배울 수 있다는 점, 회사by 회사겠지만, 열정적인 사람들과 안정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실제로 나는 지난 1년간 빠르게 성장하는 조직에서 일하면서 안정적이었고, 많은 업무를 배울 수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성장했다. 

진짜로요..

그런데도 난, 요즘 시도때도 없이 창업을 생각한다. 두 번의 창업 실패에도 불구하고, 창업에 비해 조직이 주는 장점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남들이 하기 쉽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창업을 꿈꾸고 있다. 도대체 왜? 



창업의 세 가지 장점 


1. 창업을 통해 '진짜 오너(Owner)'가 될 수 있다.   

많은 회사에서 '오너쉽'을 강조한다. 회사 일을 '내 일 처럼' 하라는 뜻이다. 회사 일을 내 일처럼 하게 되면,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일을 즐기게 된다. 비젼과 미션을 강조하고, 이를 내부에 잘 전파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면 실제로 오너쉽고 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현타'가 온다. 내가 '진짜 오너'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조직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하고, 문제를 해결할 때 내가 원하는 방식보다는 조직이 선호하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 또 성과를 내기 위한 나의 노력과 보상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반복되면 '번아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쳤지만 지쳤다고 말하지 않다가 진짜 지치게 된다..

반면 창업은 내가 '진짜 주인'이 되는 일이다. 직이 아닌 내가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는 주체가 나인 만큼, 노력에 상응하는 (혹은 그 이상의) 보상까지 얻을 수 있다. 한 번이라도 자신의 일에 오너쉽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오너쉽을 갖고 일하며 성과를 내는 일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잘 알 거라 생각한다. 창업을 통해 내가 내 일의 '진짜 주인'이 되는 건, 그 이상으로 짜릿한 경험이다.   


2. 창업을 통해 적응력과 문제해결력을 기를 수 있다.  

세상은 전에 없던 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시대를 통찰하는 혜안을 갖지 않은 사람들도, 시대가 전과 달리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하고 있다. 어제는 정답이었던 일이 내일은 정답이 아니게 된다. 변화가 빠르고 불확실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는 적응력과 문제해결력이 중요한 능력이 된다.  


창업을 하면 모든 일들을 직접 처리해야 한다. 회사에서는 내가 담당한 부서에서 나에게 할당된 일만 잘 수행해내면 되지만, 창업은 모든 부서의 모든 일들이 나에게 할당 된다. 내가 일을 분배하고, 내가 일을 받아서 처리해야 한다. 내가 마케팅팀장이자 마케팅 팀원이 되고, 인사팀장이자 인사팀원이 되고, 회계팀장이자 회계팀원이 되는 셈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을 못이루는 일들이 반복된다. 

쓰다보니 창업의 힘든 점을 말하게 되는 것 같은데..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건 아니고, 좋은 스트레스는 개인을 성장시킨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 번 어려운 과정을 겪고 나면 그 이후에는 어려웠던 일들이 아주 쉽게 느껴진다. 문제를 직면하기 전에는 내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면, 한 번 겪은 후에는 많은 것들을 알게되거나, 최소한 내가 뭘 모르는지 정도는 알게 된다. 


3. 창업을 통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어렸을 적 썼던 일기장은 언제 꺼내봐도 새롭다. 그 때 내가 저런 생각을 했구나,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기도 하고, '그땐 참 어렸지'하며 달라진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도전하는 건 삶의 발자취를 남기는 일이다. 당신이 만들어내는 사업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분명하게 나타낸다. 


창업은 당신의 삶에 이야기를 더하고, 당신을 더욱 다채로운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바이브컴퍼니(구 다음소프트)의 부사장이자 국내 데이터분석의 권위자인 작가 송길영은 자신의 저서 <그냥 하지 말라>에서 "코로나로 인해 '선택적 대면'이 떠올랐다."고 말한다. 이제 사람들은 코로나를 핑계로, 정말로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만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인가? 



결론, 창업을 통해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치열하게 창업 했고, 처절하게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이 창업을 할테다. 창업을 통해 나는 평생을 가도 배우기 어려운 것들을 배웠고, 성장했다. 진짜 오너가 되어 불안과 열정을 동시에 품어 봤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해봤고, 나만의 이야기를 쌓으며 보다 매력적인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거면 됐다. 


나는 남들이 오르기도 힘든 타석에 힘겹게 올라 방망이를 두 번 휘두르며 경험을 쌓았다. 제대로 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타석에 오르련다. 내가 3푼의 멋진 타자라면 한 번만 더 오르면 안타를 칠 수 있겠지, 2푼의 타자라면 2-3번 더 휘두르면 되겠지, 1푼 타자라면 10번까지 휘두르면 되겠지, 라는 생각이다. 안타를 못쳐도 좋다. 나는 방망이를 휘두를 때 마다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니까.  

사진 출처는 imgfl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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