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한 시가 넘어선 어린 시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이불속에서 다리를 움켜쥐고 신음을 참았다. 무릎 아래쪽이 쑤시고 욱신거렸다. 마치 누군가 뼛속을 송곳으로 쑤셔대는 것 같았다.
작은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지만 거실에서 설거지하시는 엄마 귀에는 닿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불렀다. 조금 더 큰 소리로. 거실의 물소리가 멈추고 곧 방문이 열렸다. 엄마가 불을 켜지 않고 복도의 희미한 불빛만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이불을 걷어올리고 두 다리를 내밀었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내 종아리를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더 아픈 것 같았지만, 점차 따뜻한 손길이 통증을 녹여내는 것 같았다. 엄마의 손이 무릎 뒤쪽을 천천히 눌렀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그때 어머니가 '아픈 만큼 키가 큰다'라고, 성장통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건넸던 말이 기억난다.
"아프다는 게 항상 나쁜 건 아니야. 물론 아픈 건 싫은 일이지만, 이 아픔은 네가 커가고 있다는 증거거든. 네 몸이 열심히 자라고 있다는 신호야."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엄마의 말은 신기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그날 밤, 나는 엄마의 손길 속에서 잠들었다. 다리는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안했다.
---
어느 시점부터 그 어린 시절의 좋고 나쁜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 자신을 결국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일이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을 뒤로 미뤘다. 판단을 유보했다. 결국 삶이라는 것은 '나'를 다듬어가는 길인데, 여태까지 내가 해왔던 것은 '그 회사의 인재상'에 맞게, 남들이 요구하는 '규격'에 맞게 나를 맞춰온 것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역량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다움이 무엇인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계속해서 멈춤 상태였다.
한편에 불편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어느 날, 나는 오래된 독서 노트를 꺼내 들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막연한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펼쳐 읽었던 책들과 기록이 그곳에 남아있었다. 홍성태 교수님의 <나음보다 다름>, 안성은 저자의 <MIX>, 말콤 글래드웰의 <다윗과 골리앗>...
그중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다윗과 골리앗>에서 다윗이 승리한 배경에 대해 우리는 생각보다 무지한 부분이 있다. 핵심은 "자기다움"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사울 왕으로부터 하사 받은 투구와 갑옷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에게 익숙한 물매와 돌 다섯 개만을 챙겨 골리앗을 상대하러 갔다. '더 나은' 무기가 아닌, '다른' 무기를 사용하여 경쟁했다는 것. 그것이 이 이야기에서 전하고자 한 진정한 메시지였다.
그 옆 페이지에는 <모노클>이라는 잡지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 <이코노미스트>와 <GQ>를 함께 읽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이 둘을 섞겠다는 발상을 했다. 그렇게 평균 연봉 3억, 1년에 해외 출장을 10번 이상 가는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을 겨냥한 독보적인 잡지를 만들어냈다. 온갖 명품 브랜드들이 <모노클>에 광고 문의를 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책 같은 양질의 잡지'를 내놓는 데 집중했다.
나는 그런 양질의 아웃풋을 회사에서, 그리고 남들에게 내놓고 있을까.
물론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희미하게 변하는 대로 사는 것도 인생을 사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이기는 하다.
하지만 굳이 그런 선택지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는 본능이 계속 마음속을 찔러 넣었다. 그런 결과로 받게 되는 미래를 주변에서 충분히 봐왔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의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왜 책상은 네모여야 하지?
컴퓨터와 마우스가 왜 이 모습이어야 하지? 스마트폰의 형태는 개선의 여지가 없을까?
하지만 나는 그동안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질문을 멈추고, 주어진 답만을 따라가고 있었다.
확실하니까.
---
어머니의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된다.
아픔은 성장의 신호라고.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불편함, 이 답답함도 어쩌면 또 다른 성장통인지 모른다. 다만 이번에는 신체가 아닌 '나'라는 존재가 더 단단해지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규격화된 틀에서 벗어나 나만의 모양을 찾으려는, 다윗이 투구와 갑옷을 벗어던지고 물매를 집어 들었던 그 순간처럼.
엄마가 내 다리를 주물러주듯, 나는 나의 삶을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다시 주물러가려 한다. 남들이 정해놓은 '더 나은' 길이 아닌, 나에게 맞는 '다른' 길을 찾아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