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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 <역사>

그리스 -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다룬 세계 최초의 역사 기록

by 최서우


이번에는 그리스 역사 고전을 읽었다. 헤로도토스(Ἡρόδοτος)의 <역사(Ιστορίης απόδεξις)>. 그리스-로마 고전번역가인 故천병희 선생의 손을 거쳤다. 헤로도토스는 서양에서 역사의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는데, 신화적인 요소들을 가급적 줄이고(물론 신탁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자신이 직접 목격한 것과 해당 지역 주민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역사를 저술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큰 줄거리 틀은 어떻게 헬라스(그리스) 세계와 비헬라스 세계와의 갈등이 시작했고, 후반에는 헬라스-페르시아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초창기 갈등이 시작된 이유는 어이없게도 상호 간의 여자납치. 포이니케인(페니키아)의 이오(아르고스인) 납치, 이에 대한 복수로 이뤄진 헬라스인의 에우로페 공주와 메데이아 공주 납치. 한 세대 뒤 일어난 트로이에서 헬레네를 어떻게 납치했고, 헬라스가 어떻게 복수했는지에 대해 서술하는데, 신화적인 요소가 배제된 게 흥미롭다.


이후 아시아에 진출한 헬라스계 뤼디아와 메디아 세력에 대한 역사를 저술하고, 어떻게 이 두 지역이 페르시아 퀴로스 대제(키루스 2세)에게 정복되었는지 언급한다. 이후 동쪽으로 시선을 돌려 바빌론의 간략한 역사와 페르시아의 정복, 그리고 퀴로스 대제가 어떻게 스퀴타이 지역에서 최후를 맞이했는지에 대해 서술하는데, 이것이 1권이다.


2권에서는 아이귑토스(이집트)의 역사를 먼저 언급하고, 퀴로스 대제의 아들 캄뷔세스(캄비세스 2세)가 어떻게 이집트를 정복했는지에 대해 저술한다. 아이귑토스의 간략사뿐만 아니라 문화, 생태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되는데, 마치 인류학 논문을 읽는 기분이 든다.


3권에서는 다시 페르시아 시선으로 이동해서, 캄뷔세스 사후 다레이오스(다리우스 1세)가 어떻게 내부 분란을 수습하고 왕으로 즉위했는지를 보여준다. 4권에서는 내부 분란을 수습한 다레이오스의 스퀴티스(스퀴타이족의 영역)과 리뷔에(리비아) 원정과 실패를 다룬다. 물론 앞에서 한 것 같이 스퀴타이족과 리뷔에의 문화와 지리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룬다.


5권부터 본격적으로 헬라스와 페르시아의 갈등과 전쟁을 다루는데, 먼저 페르시아의 트라케와 마케도니아 정복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오니아가 반란을 일으켜 페르시아가 임명한 토착 참주들을 몰아내는데, 이에 반란군 편을 든 아테나이(아테네)가 개입하여 페르시아의 중요도시 사르데이스(오늘날 사르트, 성경에서 나오는 사데)에 불을 지른다. 이후 6권에서 페르시아가 이오니아 반란을 분쇄하고 본격적으로 헬라스 세계와 전쟁을 벌이는데, 밀티아데스가 활약한 마라톤 전투에서 패하고 만다. 흔히 알려진 마라톤 경기의 기원과 달리, 전령이 246km를 뛰어 이틀 만에 스파르타에 도달한 것과(심지어 아테네까지 뛰어서 다시 돌아왔다. 그러고도 살아남았다.) 아테나이 군이 마라톤에서 완전군장으로 서둘러 돌아와 방어한 것이 실제 역사다.


7권부터 9권까지는 다레이오스 사후 즉위한 크세르크세스 1세(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헤로와 동일 인물이다!)의 헬라스 원정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먼저 페르시아의 원정군 규모와 아테네의 방어 전력을 언급한 다음, 영화 300으로 유명한 테르모퓔라이 전투를 다룬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휘하에 있던 300명 정예군의 활약과 희생에 대해 상세히 다루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물론 영화와 달리 스파르타군은 중무장하고 있었다). 전투의 패배로 아테나이가 불타는 수난을 겪지만, 테미스토클레스가 좁은 해협을 활용해 수적열세를 극복하고 페르시아 해군을 격파하여 아테나이에 희망을 살린 살라미스 해전이 8권에서 언급된다. 마지막 9권에서는 마르도니오스의 페르시아 군을 상대로 플라타이아이 전투와 뮈칼레 전투에서 헬라스 연합진영이 승리를 거둬 격퇴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헤로도토스가 활동했던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논문과 책이 많은 시대가 아니었다. 헬라스, 소아시아, 바빌론, 페르시아, 이집트, 리비아, 스키타이 권역까지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지역 주민들의 증언과 그가 현지에서 직접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적었는데, 이는 그리스어이자 이 책의 제목인 ἱστορία(이스토리아)의 의미를 기존 '조사'에서 '역사'로 확장하여, 서양에서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는 계기가 된다. 물론 일부는 허무맹랑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자신이 진위를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다.


고대에는 그가 거짓말쟁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오늘날 교차검증이 이뤄지면서 당대 한계를 감안할 때 상당히 중요한 1차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초기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당대 헬라스 세계, 그리고 페르시아 주변 국가의 문화도 상세히 다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필러링을 하고 읽으면, 당대 헬라스 - 비헬라스 지역의 정세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


동양에서 역사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사마천이 기전체로 체계화하여 저술한 <사기>에 비해 분량이 적긴 하지만, 그보다 300년 넘게 앞선 인물인 데다가, 오늘날까지도 논문저술에 활용되는 질의응답법과 현지조사를 사용하여 역사를 저술했기에 헤로도토스가 남긴 업적은 동양 사람인 나로서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세계사에서 배웠던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1차 사료인 <역사>로 상세히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헤로도토스 <역사>, 故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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