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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고대 그리스 세계의 대전(大戰) : 아테나이 vs. 스파르타

by 최서우


지난번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어보고 고대 그리스 1차 사료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 이번에 읽은 건 투퀴디데스(Θουκυδίδης)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Ὀ Πόλεμος τῶν Πελοποννησίων και Αθήναίων)>. 역시 그리스-로마 고전번역가인 故천병희 선생의 손을 거쳤다. 그리스 원 제목처럼 펠로폰네소스 세력과 아테네 세력과의 27년 간의 전쟁에 대해 기술했는데, 10년 전에 읽었던 내용이 거의 잊혀가고 있어서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먼저 1권에서는 아테나이 진영과 라케다이몬 진영의 갈등이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분석한다. 첫째로는 케르퀴라(현 코르푸 섬)가 에피담노스(현 알바니아의 두러스)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자, 에피담노스가 코린토스에 지원요청을 하게 된다. 코린토스가 한 때 케르퀴라를 식민 시로 삼다가 해전에 패해 잃어버린 역사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친선관계를 유지한 라케다이몬(펠로폰네소스 동맹세력)과 연루되게 된다. 케르퀴라는 한편 아테나이에 지원요청을 하면서 아테나이와 라케다이몬과의 대립이 서서히 표면화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트라케 지역(오늘날 그리스 북동단 및 이스탄불 일대)의 포테이아이아가 코린토스와 라케다이몬의 지원을 받고 아테나이에 반란을 일으키면서,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데, 라케다이몬 세력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급격히 팽창한 아테나이를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2권부터 본격적으로 전쟁이 전개되게 되는데, 아르키다모스의 아테나이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하게 된다. 전쟁 초기 아테나이는 역병이 창궐하여서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그래도 페리클레스가 수비를 고수한 덕에 라케다이몬의 공격을 버텨낸다(이후 페리클레스마저 역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아르키다모스가 친아테나이 세력인 플라티이아이도 침공하면서 테베와 함께 보이오티아 지역을 장악하려고 시도한다.


3권에서는 한 때 친아테나이 세력이었던 레스보스 섬의 반란으로 시작한다. 레스보스섬은 반란을 일으키며 라케다이몬과 동맹을 맺는데, 아테나이가 뮈틸리네(미틸리니, 현재도 레스보스섬의 중심 도시다.) 원정을 단행하며 진압하게 된다. 여기서 뮈틸리네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디오도토스의 유화책과 강경파 클레온의 보복, 응징 주장으로 대립하게 되는데, 결국 디오도토스 안이 채택되게 된다. 대신 아테나이가 레스보스섬의 지주가 되어서 경제권을 장악한다. 레스보스의 반란이 진압된 것과 반대로 플라티이아이는 결국 라케다이몬에게 항복하고 만다.


4~5권에서는 두 가지의 주요 공방전과 그 외의 분쟁지역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안 퓔로스 지역에서 아테나이가 승리한 사건인데, 이는 스파르타로 들어가는 서쪽 길목이라 라케다이몬에게 상당한 위협이었다. 반면 라케다이몬 세력은 브라시다스의 지휘 하에 트라케 지역으로 침공하여 암피폴리스를 함락하게 된다. 이곳은 아테나이의 선재와 세수의 보고였기에 아테나이 경제에 타격을 주게 된다. 아테나이는 암피폴리스를 탈환하려고 했지만 지휘관인 클레온이 라케다이몬 경방패병에게 사망하게 되고, 브라시다스도 전쟁 직후 갑자기 병사하게 된다. 두 강경파의 거두가 사망하면서, 라케다이몬의 플레이스토아낙스와 아테나이의 니키아스가 평화협정을 맺어서 전쟁은 휴지기에 접어든다. 5권 마지막 부분은 정치 현실주의를 제대로 보여주는 멜로스의 대화로 장식된다.


6~7권은 아테나이의 시켈리아(현 이탈리아 시칠리아) 원정이 나오는데, 마치 미국 부시정부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보는 기분이었다. 당시 시켈리아는 아테나이를 지지하는 소도시와 라케다이몬을 지지하는 쉬라쿠사이가 대립하였는데, 세게스타가 세게노이에게 패해 아테나이에 지원요청을 하면서 원정이 시작하게 된다. 평화협정을 맺은 니키아스가 원정을 적극 반대했지만, 주전파이자 아테나이의 군사력에 자신감을 가졌던 알키비아데스를 민회가 지지하면서 니키아스, 알키비아데스, 라마코스를 사령관으로 한 원정대를 꾸리게 된다. 하지만 원정 중 알키비아데스가 헤르메스상 석주 훼손사건으로 고발되어 스파르타로 망명하면서 원정이 슬슬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아테나이가 승기를 갖추는 듯했다. 하지만 코린토스의 귈립포스가 쉬라쿠사이를 지원하면서 전황이 바뀌어갔는데, 아테나이가 지은 플렘뮈니온이 귈립포스에 의해 함락되면서 위기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그냥 철수했으면 전력이라도 보전했을 건데, 니키아스는 철수하면 자신의 정치생명이 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계속 항전하게 된다. 결국 포위를 풀지 못한 아테나이 군은 시켈리아에서 궤멸하게 된다.


마지막 8권은 시켈리아 원정의 실패로 외부와 내부에서 위기를 겪는 아테나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외부에서는 로도스를 중심으로 한 이오니아 해안 섬들의 반란이 전개된다. 내부적으로는 알키비아데스가 스파르타에서 위기를 느껴 페르시아로 망명하면서 위기를 맞는데, 페이안드로스와 안티폰이 아테나이의 민주정을 전복하여 400인회를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민주정 지지파에게 진압되어서, 과두정은 다시 몰락하는 대신, 배신자였던 알키비아데스를 다시 아테나이로 소환하게 된다. 이 와중에서도 아테나이가 헬레스폰토스 해협 지역에 있는 아뷔도스 해전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하지만 전쟁이 끝난 건 아니다. 이후 전개는 크세노폰의 <헬레니카>로 연결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경우 신탁과 신의 섭리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을 하는 것과 달리, 투퀴디데스는 철저히 신의 개입을 배제한다. 이는 아테나이와 라케다이몬 주요 정치가들의 연설이 많이 수록되었다는 것과 주요 세력 간의 협상 진행 및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에서 알 수 있다. 특히 신흥세력인 아테나이와 구 세력인 스파르타와의 대립은 이전의 미소냉전과 오늘날 미중 양강 대립과도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만 구 헤게모니 세력인 미국은 민주정, 현재 부상하는 중국은 독재정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가 두 세력으로 양분된다면 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까? 20세기 초반 구 헤게모니였던 영국과 신흥강국인 독일과의 대립은 제1차 세계대전을 낳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미국에 헤게모니를 넘겨주게 되었다. 마치 아테나이와 스파르타가 모두 마케도니아에 장악된 것처럼. 미소냉전은 여러 살벌한 대결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미국의 평화적인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과 최근 미중무역갈등으로 인해 다시금 위기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위기가 전쟁으로 이어질지 아님 평화적으로 다른 세계 구도로 넘어갈지는 두 국가가 어떻게 처신을 하느냐로 본다. 중요한 건 불필요한 갈등을 서로가 유발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신흥국의 도전으로 기존 헤게모니 국가와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하는데, 두 국가는 이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故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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