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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폰 <헬레니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종말과 이후 그리스 세계 전황

by 최서우


이번에 읽은 책은 크세노폰(Ξενοφών)의 <헬레니카(Ἑλληνικά)>.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이후의 헬라스 역사를 기록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최자영 겸임교수가 원전 번역했는데, 고대 그리스 정치와 역사 전문가이자 그리스 유학파이기도 하다.


1~2권은 한 때 델로스 동맹을 호령했던 아테나이가 몰락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아비도스 해전 이후, 라케다이몬은 키지코스를 점령하여 헬레스폰토스 해협(오늘날 다르다넬스 해협)을 장악하여 아테나이의 공급망을 끊으려고 하자, 아테나이는 망명한 알키비아데스를 필두로 라케다이몬(스파르타를 위시한 펠로폰네소스 동맹 세력) 함대를 유인하여 섬멸하는 작전을 써서 키지코스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 명장 리산드로스에게 노티온 해전에서 패하여 실각하게 된다. 게다가 라케다이몬의 견제로 인해 아테나이는 재정이 부족해서 전문노잡이를 구하기 어려운 사항이었는데, 이런 와중에도 자유민과 노예까지 노잡이로 고용해 함대를 재건한다. 전문 노잡이로 가득 찬 라케다이몬 함대에 열세였는데도 아테나이는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칼키크라티다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승리를 하였지만 아테나이 내부에서 죽은 승무원의 시체를 거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여한 장군들을 처형하면서, 아테나이의 전력이 급속도로 약화된다(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정의 부패한 형태인 중우정치를 언급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은 라케다이몬의 리산드로스는 함대를 다시 꾸려서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 아테나이 제국을 해체하게 된다. 먼저 페이라이에우스 성벽을 허문 다음, 30인회 과두정으로 체제를 바꾸는데, 이는 1년 후 민주파였던 트라시불로스가 반격에 성공하며 축출되게 된다.


3권과 5권은 패권을 확대하려는 스파르타를 보여준다. 대 아테나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스파르타가 데르킬리아스가 소아시아 카리아를 공격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다. 게다가 앨리스를 약탈하여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부에서도 영향력을 강화한다. 아기스가 죽고 리산드로스가 아게실라오스를 옹립하면서 페르시아 원정을 더욱 확대하는데, 안타깝게도 테바이와 전투를 벌인 리산드로스가 전사하면서 전장이 소강상태로 접어든다.


게다가 한 때 라케다이몬 동맹이었던 코린토스가 참전의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되자, 테바이, 아테나이와 연합하며 스파르타와 멀어지게 된다(보이오티아 동맹). 이 때문에 코린토스에서 라케다이몬과 보이오티아 동맹 간 공방전이 벌어지는데, 여기서 아테나이가 성벽을 재건하고 코논이 스파르타에 승리하면서, 다시 일어서기 위한 초석을 마련한다.


이 형세를 바라 페르시아는 결국 테바이와 아테나이를 지원하여 라케다이몬 견제에 나선다. 이는 안탈리카스 평화조약으로 연결되는데, 오히려 페르시아의 입지가 강화되고, 라케다이몬, 아테네, 테바이를 포함한 헬라스 세계는 페르시아 외교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6권부터는 분위기가 테바이가 참주를 암살되고 민주정으로 바뀌면서 서서히 입지를 강화해 간다. 우선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클레옴브로토스를 상대로 크게 승리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이후에는 테바이가 일방적으로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네 차례나 침공하게 되는데, 이는 테바이가 스파르타 윗 지방인 아르카디아를 회유했기 때문이다. 7권에는 스파르타가 어려움에 처했지만 마지막까지 도와준 플레이우스의 활약, 테바이의 에파메이논다스의 활약상이 나온다. 하지만 안티네이아 전투에서 에파메이논다스가 병사하면서, 헬라스 세계는 혼란에 빠졌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승리하면서, 각지에 참주정을 세워 패권을 확립하려는 정책은 결국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했다. 이후 한 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페르시아와 테바이를 위시한 보이오티아, 코린토스와 관계가 멀어지며, 스파르타는 서서히 몰락한다. 특히 레욱트라 전투에 패하면서는 오히려 테바이에 시달리게 되고. 테바이가 이 때다 싶어서 흥하나 싶더니, 명장 에파메이논다스가 전사하면서 헬라스 정세는 테바이, 아테나이, 스파르타가 물고 물리는 정세로 바뀌게 된다.


헬레니카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지만, 결국 승리를 쥔 세력은 그들이 변방으로 취급한 마케도니아였다. 마치 유럽 열강이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대륙 건너편 미국에 패권을 넘겨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만큼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대가는 컸다. 어느 도시국가도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고 페르시아 외교에 끌려 다닐 정도였으니까.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달리 크세노폰의 <헬레니카>는 분량이 상당히 짧다. 그래서 전개가 상대적으로 빨라 중요한 전투 및 사건도 정신 차리지 않고 읽으면 휙휙 넘어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당대에 기록된 사실상 유일한 1차 사료인지라 한 문장 한 문장 꼼꼼히 읽어나가야 한다. 특히 펠로폰네소스 전쟁 후반기와 마케도니아의 흥기 사이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면 더더욱. 또한 이 책은 종이책이 절판되어 ebook으로만 구입할 수 있는데, 대중이 이 책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아 출판이 재개되었으면 한다.


크세노폰 - 헬레니카.jpg 크세노폰 <헬레니카>, 최자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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