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에 말려든 헬라스 용병들의 이야기
크세노폰(Ξενοφών)의 저작을 하나 더 읽게 되었다. 제목은 <페르시아 원정기(Κύρου Ανάβασις)>. 크세노폰이 페르시아 왕자 퀴로스의 헬라스(그리스) 용병으로 파견되어 체험했던 전쟁 수기이다. 번역은 故 천병희 선생.
1권은 퀴로스 왕자에게 왜 그리스 용병이 파견되었는지에 대해 나온다. 퀴로스 왕자는 전임왕 다레이오스 (다리우스 2세) 왕의 차남이었는데, 왕위에 오른 형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대프뤼기아-뤼디아-캅파도키아 태수(오늘날 터키 아나톨리아 일대)였던 퀴로스는 어머니 파뤼사티스의 지지를 받고 10,000명의 헬라스 용병을 끌어들여 반란을 기획한다. 피시다이족을 자기 영토에서 몰아내겠다는 명분으로 용병을 모집했는데, 타르소이까지 진군해서야 용병들에게 본심을 알리게 된다. 쿠낙사에서 대왕의 군대를 상대로 왼쪽 날개에 메논을, 오른쪽 날개에 클레아르코스를 내세워 대왕과 마주치게 되는데, 어이없게도 퀴로스가 대왕의 본진으로 돌격하다가 퀴로스는 전사하게 된다.
2권에서는 퀴로스가 전사한 후 그리스 용병에게 온 첫 번째 시련을 다루고 있다. 용병들은 페르시아와 휴전협상을 추진하게 되는데, 휴전협상에 참여했던 팃사페르데스가 배신하여 협상을 위해 갔던 헬라스 용병 대장들을 체포하고, 병사들을 처단한다. 퀴로스 군대에서 오른쪽 날개를 지휘했던 클레아르코스와 프록세노스를 비롯한 4명의 대장들이 처형되고, 페르시아의 사주를 받은 메논과 클레아르코스도 후에 범죄자로 처단되어, 용병들은 수뇌부를 갑자기 잃게 된다.
3권부터 크세노폰을 본인을 비롯한 4명의 지휘관이 새로 임명되면서, 페르시아에서 철군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크세노폰 본인도 퀴로스가 제안한 명분 때문에 용병으로 오게 되었는데, 졸지에 이들을 인솔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비상시국에 임명된 지휘관들은 사륜거와 천막을 제거하는 대신 군사 무장을 강화시킨다. 이는 추격군의 화살 공격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는데, 팃사페르데스를 중심으로 한 페르시아 군이 철수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4권에는 페르시아 군의 방해로 인해 아나톨리아 반도 고지대로 철수하는 헬라스 용병들의 퇴각 과정이 그려진다. 고지대로 가서 페르시아 본군의 추격을 뿌리치긴 했지만, 카드두토이 족의 방해를 받았다. 게다가 고지대 폭설로 인해 동상과 추위로 고생한 용병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여러 이민족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용병들은 흑해에 도달하여 ‘바다다, 바다다(θάλαττα! θάλαττα!)’를 외치며 페르시아 탈출에 성공한다. 퇴각하는 과정에서 낙오한 자가 속출해 병력은 8,000명대로 줄어든다.
5~6권에서는 헬라스 군이 해로를 통해 퇴각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못쉬노이코이족, 칼뤼베스족, 티바레노이족을 거쳐 코튀오라에 도달하는데, 행군 중에 크세노폰이 용병들을 속여 파시스로 데려가려 한다고 소문이 나자, 군대의 기강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온갖 음모에 대해 크세노폰이 이에 대해 부인하고 해명하며 병사들의 기강을 사로잡는다. 후속 조치로 원활한 지휘를 위해 케이리소포스를 단독 지휘관으로 선출한다(하지만 그는 얼마 안 있어 사망하고, 네온이 지휘관을 인계받는다).
7권에서는 비잔티온(오늘날 이스탄불 서부)에 도달한 후 페린토스와 람프사코스를 거쳐 귀로 하려는 내용이 다뤄지는데, 도중 세우테스에게 지원을 받아 튀노이족을 공격하여 식량을 공급받게 된다. 하지만 급료를 다 지급하지 못하여 갈등을 겪는데, 스파르테의 티브론이 헬라스 용병들을 페르시아의 팃사페스데스와 파르나바조스를 치는 조건으로 인수하면서 막이 내린다.
크세노폰의 원정기는 너무나 처절하다. 퀴로스 왕자가 대왕과의 첫 전투에서 전사하고 시련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줄거리에서는 주요 내용만 다뤘지만, 용병들은 식량도 본인 돈으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식량을 살 재화와 장소를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고지대에서의 겨울까지 합쳐져서 매우 혹독한 여정이었다.
크세노폰을 위시한 지휘관들은 이런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군사들을 독려하고 달래주면서 행군을 이어간다. 특히 크세노폰이 온갖 음모론의 중심이 되었는데도 이를 병사들에게 해명하고 오해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인데, 잘못된 소문으로 어려움을 겪는 리더들이 어떻게 어려움을 대처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크세노폰이 고대판 종군 기록의 예시를 잘 보여줘서 그런지, 후세 역사가들은 그의 글 구조를 기반으로 알렉산드로스의 원정기를 기술해 나가기 시작한다. 내가 읽었던 대왕의 두 원정기의 원조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원정기는 오늘날 종군기자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길라잡이기도한데, 당시 용병대의 상황을 가감 없이 서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역자는 다운스의 <세상을 바꾼 책들>에 포함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어려운 상황에서 보여준 크세노폰의 리더십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