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프랑스 지역은 어떻게 로마의 영역으로 되었는가?
율리우스 카이사르(Iulius Caesar)의 <갈리아 원정기(Commentarii de Bello Gallico)>. 카이사르가 갈리아 총독 부임 이후 현재 프랑스 일대의 원정기를 스스로 저술했다. 故 천병희 선생이 번역했다.
원정기를 보면 카이사르 스스로를 3인칭으로 서술한 게 흥미롭다. 아무래도 나름 객관적인 기록임을 강조하기 위해 그런 것 같지만, 승승장구한 전투 기록으로 가득하기에 자신이 패배한 전투를 일부 누락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당시 갈리아는 각 부족 간 세력 다툼으로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다. 로마처럼 통일된 세력이 아니어서, 카이사르는 이를 잘 활용해 갈리아 원정을 시작하게 된다. 먼저 아이두이족의 구원 요청으로 헬베티족과 수에비족을 진압하여, 로마에 우호적인 부족들에 지지를 얻게 된다. 이후 레미족의 항복을 받은 카이사르 군은 레미족의 골칫거리인 벨가이 연합군에 승리를 거두면서, 북부 갈리아 지역의 패권도 장악하게 된다.
이후 알프스 부족과 대서양 연안의 베네티족을 공격했지만, 알프스 작전은 영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대서양을 장악하면서 라인강 도하와 두 번의 브리탄니아 원정을 감행, 이들을 견제하여 로마가 장악한 갈리아 진영의 안정을 도모한다. 하지만 안정을 찾아갈 즈음 차츰 갈리아 부족들이 로마에 서서히 저항하게 되는데, 이 정세를 본 베르킨게토리스가 갈리아 부족들의 반 로마 연합군을 대규모로 구성하게 된다. 심지어 갈리아 전쟁 초중기 로마의 동맹인 아이두이족까지 끌어들여 레미족을 제외한 모든 갈리아인들을 반로마 연합으로 만들었다.
워낙 저항이 거세서 그런지, 베르킨게토리스와의 전쟁 서술이 갈리아 원정기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카이사르의 몇 안 되는 패배도 여기에는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무기와 군 체계가 로마군보다 덜 발전해서 그런지, 안타깝게도 빈게네 전투와 알레시아 전투에서 베르킨게토리스가 패하게 된다. 베르킨게토리스를 사로잡은 후 갈리아 지역의 로마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함께하게 된다. 하지만 베르킨게토리스는 민족주의의 발흥 이후 프랑스에서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카이사르와 싸웠던 부족들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국가명과 도시명에 그대로 남아 있다.
어찌 보면 카이사르라는 승자의 기록으로 보일 수 있어서, <갈리아 원정기>가 너무 로마 중심의 서술로 이뤄졌다는 비판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대 갈리인들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지난번 내가 읽은 게르마니아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진 고고학 지식까지 참고하면서 주의해서 읽는다면 1차 사료의 가치가 있다. 또한 워낙 쉽게 저술된 라틴어 문체라 오늘날 라틴어 중급 이상을 배우는 사람도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를 첫 원서로 접한다고 한다.
고대에는 군사능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카이사르 같은 이의 군사 활약상이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오늘날 지구촌이라는 세상에서 우리가 바라는 영웅상은 갈리아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카이사르가 아닌 세계의 공존과 발전을 기여한 사람들로 볼 수 있다. 역자의 서문 말미처럼, 오늘날 필요한 사람은 국적을 초월해 가난한 이웃을 평생 돌봤던 테레사 수녀와 슈바이처, 스마트폰의 보급을 확대한 공로가 있는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