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을 기록한 또 다른 라틴어 기록
또 다른 알렉산드로스 대왕 관련 사료를 도서관에서 찾았다.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Quintus Curtius Rufus)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전기(Historiae Alexandri Magni Macedonis)>. 이 책도 충북대 사학과 윤진 교수가 원전 번역했다.
기본 구성은 아리아노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원정기>와 비슷하다. 다만 아리아노스의 기록과 달리, 루푸스의 전기는 일부 소실되었다. 부왕 필리포스 대왕의 암살부터 테바이 반란진압, 그라니코스강 전투, 밀레투스와 할리카르나소스 공방전이 기록된 1~2권이 소실되어, 오늘날까지 남은 3권부터 시작한다.
3권부터 5권까지는 페르시아와 이집트 원정을 다루는데, 아리나노스의 구성과 비슷하다. 다레이오스 왕(다리우스 3세)의 대군을 물리치고 승기를 잡은 이소스 전투, 티로스와 가자 공방전, 이집트의 항복을 거쳐, 페르시아를 사실상 장악한 가우가멜라 전투, 바빌론의 항복과 베쏘스의 배신으로 인한 다레이오스 왕의 죽음을 다룬다. 5권 마지막 부분과 6권 초반 부분이 소실되었는데, 다레이오스 왕의 임종과 트라케 반란 진압과 스파르타가 반란을 일으킨 원인(메갈로폴리스 전투)이 언급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오늘날 6권은 마케도니아의 스파르타 반란 진압과 스파르타 왕 아기스 3세의 전사로 시작한다. 이후 아마존 여왕인 텔레스트리스와의 만남, 아르타카나(오늘날 헤라트로 추정)를 공략하며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까지 서부까지 진출하는 과정을 다룬다. 하지만 6권 후반 딤노스의 모반음모를 처단하면서, 그의 아들 필로타스와 노장인 파르메니온과 숙청하게 된다.
7권에서는 코카서스 산맥(실제는 힌두쿠쉬 산맥)으로 진출하여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깊은 곳까지 나아간다. 또한 스피타메네스의 배신으로 체포된 베쏘스를 압송하고, 오늘날 타지키스탄 쿠잔드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건설 후, 마라칸다 요새까지 점령한다(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이후 소그디아 바위산 공방전에서 승리하며 중앙아시아까지 장악하게 된다.
8권에서 알렉산드로스는 또 큰 실수를 하는데, 술자리에서 자신의 공적을 비하했다고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자신을 살린 클레이토스를 홧김에 죽이게 된다. 저자는 왕이 술과 동방의 문화에 빠지면서, 서서히 타락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중간에 자신의 정식 아내가 된 록사네에 대해 언급되는데, 록사네를 소그디아 바위산 공방전에서 만났다고 기록한 아리아노스의 것과는 사뭇 다른데, 장인인 옥시아르테스가 어느 도시를 다스라디가 항복했다고 언급한다. 이후 헤르몰라오스와 소스트라토스의 암살 음모를 발각하여 주동자와 칼리스테네스를 처형하게 된다.
후반부에는 인디아 원정에 대해 나오는데, 먼저 니사와 마자가이(마사가)를 점령한 후, 아오르노스 바위산 공방전(피르-사르산)에서 승리를 거둔다. 인더스 강에 도달해서는 옴피스(탁실레스)의 항복을 받아내고, 코끼리병을 중심으로 편제한 포로스를 상대로 승리한 히다스페스 강 전투가 나온다.
9권부터 10권까지는 인디아에서 철수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과 장례까지 다루고 있다. 상갈라 공방전에서 승리한 마케도니아군은 히파시스 강에 이르는데, 알다시피 오랜 세월 전쟁으로 지친 병사들로 인해 철군을 하게 된다. 철군을 하면서 수드라카이족과 말리아족과 그 외 다른 부족들을 먼저 제압하며 전진하게 된다. 10권에서는 불만을 품은 병사들을 처형한 후 갑작스레 알렉산드로스가 죽었다고 나오는데, 이는 10권 일부가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리아노스가 대왕의 업적을 기록하고 끝난 것과 달리, 왕의 사후 정통 왕가를 비호하는 페르디카스파와 대왕의 이복동생인 아리다이모스를 세우려는 멜레아그로스파와의 갈등이 다뤄지고, 이것이 마케도니아 분열의 씨앗이 되었다고 언급한다. 마지막에는 알렉산드로스 시신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운구되어 안치되었다는 기록으로 끝을 맺는다.
루푸스의 대왕 전기는 다른 전기들과 달리 라틴어로 유일하게 기록되었다. 그래서 그리스 신들이 로마 신의 이름으로(예로 들어 아테나를 미네르바로 기록) 나온다. 또한 아리아노스의 기록과 비교하자면 전장과 전투상황에 대해 매우 상세히 다뤄서 군사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교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부하들의 반란들이 어떻게 진압되었는지 그리고 명장 클레이토스를 어떻게 우발적으로 죽이게 되었는지 상당히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래서 기록이 온전히 남았더라면, 더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에 빠진다.
일반 독자라면 스토리 라인을 보고 넘어갈 일이지만, 전문가들이 아리아노스와 다른 전기의 기록과 비교하면, 일부 전투에서 참전한 장군들의 이름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첫 번째 정실부인인 록사네를 만나는 과정도 아리아노스 기록과 다르다는 게 매우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대왕의 실수를 어느 정도 감싸고 어느 정도 정황이 있었다고 기록한 아리아노스와 달리 루푸스는 왕이 페르시아의 문화를 접하면서 서서히 타락했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술김에 그라니코스강 전투의 생명의 은인인 클레이토스를 우발적으로 죽인 사건에서 더욱 부각된다.
이처럼 아리아노스의 기록과 서로 다른 부분도 있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을 구성할 때는 루푸스의 전기뿐만 아니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의 <역사 도서관>의 기록도 참고해야 함을 저자가 주석에서 드러내고 있다. 윤진 교수의 노고로 두 권의 전기가 번역되었는데, 나머지 다른 역사서들도 번역되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번역서로도 입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