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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우 Jun 26. 2022

의성 고운사와 사촌마을

최치원의 흔적이 남은 고운사 가운루, 사촌마을 만취당과 600년 인공림

의성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이라면 고운사(孤雲寺)를 꼽을 수 있다. ‘고운’이라는 말을 보니 이를 호로 삼은 최치원 선생과도 인연이 있는데, 승려 여지, 여사와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건립했다고 한다. 옛 계곡물 위에 우뚝 서있는 가운루는 사찰의 남북을 이어주는 다리이자 강당이었다.


고운사 남동쪽 점곡면에는 안동 김씨의 집성촌인 사촌마을이 있다. 마을에는 퇴계 이황의 제자 김사원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만취당이 있는데, 개인이 지은 목조건물 중에는 가장 오래되었다. 마을 서쪽에는 천연기념물 제405호로 지정된 의성 사촌리 가로숲이 있는데, 600년의 역사가 있는 숲답게 줄기가 굵은 나무들로 가득하다.


의성 북편의 두 명물 고운사와 사촌마을로 가 보자.


의성 고운사


고운사는 당진영덕고속도로 북의성 나들목에서 가깝다. 나들목에서 내려 5번 국도를 타고 안동방향으로 간 다음 79번 지방도를 따라 계속 직진하자. 그러면 팽목삼거리 부근에서 고운사로 가는 표지판을 따라 곧장 가다보면 고운사 버스종점이 나온다.


버스종점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일주문과 사천왕문이 보인다. 사천왕의 시험에 통과하고 들어가면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돌다리 앞에 누각이 보인다. 현판에는 가운루(駕雲樓)라고 적혀 있다.


가운루는 최치원이 여지와 여사 두 대사와 함께 건립했다고 한다. 이후 17세기 중반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기록대로 조선 중기의 양식이 두드러진다. 가운루를 받치고 있는 기둥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돌기둥을 기초로 삼아 각기 높이가 다른 나무기둥들이 그 위를 지탱하고 있다.


기둥 아래에는 계곡물의 흔적이 있는데, 지금은 메워져서 말라 있다. 물이 흘렀던 시절에는 은은한 새벽안개 때문에 말 그대로 ‘구름 위 누각’이었을 것이다. 돌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사찰 남편과 북편을 이어주는 다리이자 법당의 역할도 했는데, 우리나라 보기 드문 불교 건물 형태다.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가운루. 현재는 조선 중기의 양식이 두드러진다. ⓒ 최서우
뒤 편에서 바라본 가운루


돌다리 왼편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호랑이벽화가 걸려 있는 우화루와 극락전이 나온다. 올해 부처님오신날 극락전에서는 상당히 의미 깊은 행사가 있었는데, 1989년 도난당했다가 2016년 서울 모처의 사립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된 ‘사십이수관음도’가 올해 3월 20일에 원래 극락전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고운사의 관음도 외에도 20세기 후반에 불화 5점이 또 도난당했다고 하는데, 이들의 행방은 아직 알 수 없다.


극락전과 지나면 현판에 만세문이라고 적힌 삼문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연수전이라는 현판이 보이는데, 70세 이상의 정이품 이상의 문관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인 기로소에 영조가 들어가는 것을 기념하여 세운 건물이다. 고령이 된 왕의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위해 지은 건물인데, 유교 양식 건물이 사찰에 있어 상당히 이채롭다. 오늘날 연수전은 고종이 기로소에 들어간 1902년에 다시 개창한 것인데, 2020년 보물로 제2078호로 지정되었다.



극락전 외부
극락전 내부. 불상 왼편에 도난당했다가 돌아온 사십이수관음도' 불화가 올해 부처님 오신날부터 공개되었다.
영조가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여 지은 연수전


연수전 뒤편 약사전을 보는 것도 잊지 말자. 보물 제246호 석조여래좌상이 있기 때문이다. 손상이 된 흔적 하나 없이 광배와 받침대가 온전히 남아 있어서 요즘 불상인줄 알았는데, 무려 9세기 통일신라의 양식이다. 보통 광배는 머리 뒤 두광(頭光)과 몸을 감싸는 후광(身光)으로 나뉘는데, 둘을 구분하지 않고 배(舟)모양으로 한꺼번에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광배에 중심에는 연화문이, 주변부에는 화염문이 표현되어 있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서 벗어나 왕실의 지원을 받았던 의성 고운사. 오늘날에도 고운사는 봉화군, 영양군 심지어 안동시와 영주시까지 아우르는 경북 북부를 관할하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보물 제246호 석조여래좌상


점곡면 사촌마을


고운사에서 다시 나와 좌회전하여 79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한옥들로 가득한 마을이 하나 나온다. 안동 김 씨의 집성촌인 사촌마을이다. 사촌마을 주차장에는 의병 기념비가 하나 보이는데, 운산 김상종이 1896년 의병을 조직하여 일제에 항거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62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전투가 끝난 후 일제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마을에 불을 질렀다.


그래서 대다수 집들을 보면 길어야 100여 년 남짓 된다. 하지만 여기서 예외인 곳이 하나 있는데, 바로 마을 중심에 있는 만취당이다. 만취당은 마을 종택의 서편에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사찰, 궁궐 등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된 개인 집 건물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 김사원이 1584년에 대청형태로 완공했다. 이후 영조 대에 동쪽으로 2칸, 서쪽으로 1칸 온돌방을 추가해서 오늘날에 이른다.


사촌마을 안동 김씨 종택과 만취당


400년이 넘은 마루에 앉아 봤다. 정면에 보이는 만취당 현판 글씨는 김사원의 동문인 한석봉의 작품이다. 현판 반대편에는 서까래 끝이 보이는 것을 막은 우물천장이 있다. 보통 궁궐이나 사찰에만 보이는데, 개인 집에 단청을 해서 상당히 이채롭다.


건물 좌편에는 세 개의 전통 창이 있는데, 여름에 이곳에 앉아 있으면 상당히 시원할 것 같다. 창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니 오래된 나무가 하나 보이는데, 조선 연산군 시절 송은 김광수가 심은 향나무다. 무려 500년이나 된 나무인데, 줄기의 단단한 부분이 강한 향기를 내는 부분이 있어, 이를 제사 때 향료로 썼다고 한다.


만취당 내부.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
현판 반대편. 단청을 한 우물천장이 눈에 띈다
500년 된 만취당 서편 향나무


사촌마을은 충렬공 김방경의 5세손 김자첨이 1392년 이곳에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마을이 중국의 사진촌(沙眞村)과 비슷하다고 사촌이라고 지어졌다. 사촌마을은 서애 류성룡의 출생지이기도 한데, 류성룡의 어머니 안동 김씨의 친정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부장제와 달리 임진왜란 이전 양반 가문도 처가에 가서 아이를 출생하는 일이 흔했다. 참고로 류성룡의 어머니는 향나무를 심은 송은의 딸인데, 서애가 왕의 명을 받아 외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인가, 만취당 오른편 길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안동 김 씨 가문들이 오른편에는 풍산 류 씨 가문들이 살고 있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서애 류성룡의 형 류운룡의 7세손 태춘이 하회에서 사촌으로 입향해서 그렇다. 7대조 작은할아버지가 출생한 곳에 입향했을 때 류태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전통 가옥 외에도 마을 서쪽 편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405호 사촌 가로숲을 보는 것을 잊지 말자. 마을에 이주한 김자첨이 이곳에 이주할 때 마을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인공림이다. 여기에 있는 굵은 나무들은 600년 동안 마을의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


숲을 거닐다 큰 도로 건너에는 ‘안동김씨사촌입향육백년추원비’가 있다. 좌우 사자상에는 지과필개(知過必改)와 득능막망(得能莫忘)이라고 적혀 있는데, ‘잘못을 깨달으면 고쳐야 하며, 능력을 얻으면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원래 이곳에는 옛 별신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당산제가 열렸다고 한다. 말 그대로 신성함과 기능성 모두를 갖춘 숲이다.


천연기념물 제405호 의성 사촌리 가로숲. 서풍을 막기 위해 600년 전 조성된 인공림이다

 

안동김씨사촌입향육백년추원비. 원래 이곳에는 별신당이 있어서 당산제가 열렸다. 이런 이유로 일부 학자들은 가로숲 대신 당산숲으로 지칭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의 흔적이 남은 고운사에서 조선시대 사촌마을을 보며 마치 북의성의 역사 파노라마를 거쳐 가는 느낌이 들었다. 고운사에서는 불교 본연의 사찰건물을 포함해서, 최치원의 도교 사상이 담긴 가운루, 그리고 유교식 건물의 연수전까지 유불선 사상이 모두 조화를 이뤘다.


사촌마을은 여말선초 정착시기부터 의성의병의 근현대사 초입까지 잘 나타내는 집성촌이라고 할까. 특히 서편에 있는 숲이 인공림이라는 것이 매우 인상 깊었다. 유불선 사상과 자연이 잘 조화된 고운사와 600년 역사의 사촌마을을 함께 즐기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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