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백수가 체질일지도

직장인일 때보다 더 바쁜 백수로서의 하루

by 서연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백수의 신분이었던 적이 없었다.


초중고 12년을 착실히 학생으로 살았고

스무 살의 반은 대학생, 반은 수험생으로 살았다.

그리고 스물한 살에 다른 대학에 입학하여 4년 간의 대학생활을 하였고

졸업하기 전에 취업하여 공백기간 없이 바로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직장생활 3년이면 온다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환승이직이 최고라고들 하지만 회사는 더 이상 못 다니겠고,

퇴사일은 점점 다가오는데 탈락 소식만 들려오고.

퇴사 통보부터 당일까지 한 달간 죄 없는 손톱만 물어뜯으며 퇴사 디데이를 맞이하였다.

이직처가 정해진 채 도비처럼 해방감을 느끼며 퇴사하는 모습을 그려왔건만, 갈 곳도 계획도 없이 직장만 잃은 내 모습은 스스로 느끼기에 그저 초라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굴려졌고, 난 백수가 되어버렸다.

꽝꽝 얼어붙은 취업 시장이기에 재취업도 마음처럼 쉽지 않을 테고, 공백기는 얼마나 길어질지 기약이 없다.

취준생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공백기라던데, 스멀스멀 불안감이 차올랐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 스트레스로 인한 식욕부진과 탈모. 하지만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해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부정적인 마음가짐을 바꾸었다.

백수가 되었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24시간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출퇴근 포함 거진 12시간을 회사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지금의 이 공백은 내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 시간과 여유의 부족이라는 이유로 미뤄뒀던 여러 가지 활동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가다 보니 이직처 없는 백수로 살아보는 것도 썩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직장을 다니는 동안 '해보고 싶지만 못했던' 활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뭐 여느 직장인들이 다 그렇듯 유튜브가 가장 먼저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몇 번 마주쳤던 주제인 스마트스토어가 이어서 떠올랐다.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거나 스마트스토어로 부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퇴근하고 운동하랴, 자소서 쓰랴 바빴던 나에겐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채널을 나의 포트폴리오로 키우고, 스마트스토어 운영을 통해 유통업에 대한 감각과 고객 데이터 분석 스킬을 업그레이드해보자. 이렇게 공백기를 보낸다면 공백기도 공백기가 아닌 것처럼, 어떤 방향으로든 업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자, 그러면 유튜브와 스마트스토어는 하기로 했고, 어떤 콘텐츠와 어떤 제품으로 시작하면 좋을까? 우선 나에겐 취업 준비가 1순위이기 때문에, 하루를 온종일 유튜브 편집이나 스토어 관리에 쓸 순 없다. 기존에 회사 다닐 때 했던 것처럼 1일 1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오후에는 자기소개서를 쓰고 지원서를 쓰는 시간을 가지고, 오전 시간대를 활용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숏폼 형식의 브이로그이다. 1분가량의 숏 브이로그는 하루에 2시간만 투자하면 만들 수 있다. '취준생 일상'을 콘셉트로 매일 숏 브이로그를 하나씩 만들어 업로드한다면 큰 공수를 들이지 않고도 유튜브 채널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숏 브이로그를 메인으로 하되, 여행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는 롱폼으로도 촬영해 롱 브이로그로 업로드하기로 했다. 유튜브 채널은 11월 20일부터 1일 1 업로드 규칙을 깨지 않은 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롱 브이로그도 편집이 더디긴 하지만 틈나는 대로 열심히 편집 중이다.


스마트스토어는 사실 큰 고민을 거치지 않았다. 직장인 시절 스마트스토어 부업을 눈 여겨볼 때부터 액세서리 관련 스마트스토어를 해보고 싶었다. 우선 부피가 작아 재고가 차지하는 공간이 크지 않을 것 같았고, 액세서리 상가가 있는 남대문시장도 우리 집에서 가기에 매우 용이하며, 여러 가지 소품들을 활용한 이미지컷을 찍을 수도 있고 내가 직접 착용샷을 찍을 수도 있어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남대문시장에 방문해 아주 소량의 제품을 구매해 왔고, 상품 이미지컷 촬영까지 완료하여 현재 스토어 오픈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외에도 예상치 못하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나 스스로 정한 규칙인 1일 1 지원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동시간이나 틈틈이 시간 날 때 책을 읽기도 하고, 2년째 운영 중인 일상 블로그도 매주 게시글을 업로드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동안 고생했으니 늦잠도 자고 쉬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내 안에 아직 남아있는 불안감이 나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의 나는 그 어떤 때보다도 주도적으로, 치열하게, 공백기 아닌 공백기를 보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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