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길거리 푸드트럭 이야기

나는 멀리 가지 않기로 했다 #8

by 운채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눈 내리는 날의 고요함. 차가운 바람에 빨개지는 볼.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순간. 그리고 길 모퉁이에서 피어오르는 김. 붕어빵 굽는 냄새. 오뎅 국물의 뜨거운 김. 군 고구마의 달콤한 향. 겨울은 이런 것들로 채워진다.

동네 길거리 음식들. 화려하지 않지만, 행복을 파는 작은 트럭들.


어린시절, 엄마 손을 잡고 장날에 만나는 온갖 간식거리들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엔돌핀 이었다. 그 행복감은 나이들어 내가 엄마자리에 서 있는 지금도 똑 같다. 빨간 양념의 파 숭숭 넣은 떡볶이, 순대와 튀김, 팥 앙꼬의 찐빵과 찹쌀 꽈배기 까지.


그 시절과는 다르지만, 사거리 코너에서, 순대를 찌는 가마 솥에서, 그 맛들은 나의 허기를 채워주며, 추억의 시간을 충전해주는 영혼의 밧데리가 된다.


사거리 코너의 붕어 빵과 오뎅

신호등 앞, 사거리 코너에 늘 있는 포장마차.

왼쪽엔 붕어빵 기계가 돌아가고, 오른쪽엔 오뎅이 담긴 큰 솥이 김을 내뿜는다. 할머니 한 분이 그 앞을 지키신다. 빨갛게 익은 커다란 게 한마리와 통고추와 대파가 우러나온 오뎅국물은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나를 유혹한다.

"붕어빵 3개요. 오뎅도 두개 먹을께요!"

눈 내리는 날이나 진눈개비 라도 내리는 날엔 더 생각난다. 출 퇴근길, 탄이 산책길, 지나가다. 추워서, 출출해서, 그냥 먹고 싶어서...


할머니는 붕어빵을 종이봉투에 담으며 묻는다.

"강아지 데리고 왔어?" 탄이를 몇 번 보시고는 물어보신다.

"네 조기 벤치에 있어요. "탄이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마킹 중이다.

오뎅 국물을 한 모금 마신다. 뜨겁다. 입술이 데일 것 같지만, 호호 불며 한입 베어문다. 목구멍으로, 식도로, 위로 몸이 따뜻해진다. "그래! 이 맛이야!!"

붕어빵을 한 입 베어문다. 팥이 가득하다. 슈크림도 있지만 난 언제나 팥빵이다. 겉바속초의 이 작은 붕어빵 하나로 오늘도 행복해 진다. 추운날의 작은 사치. 신호가 바뀌면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모두 추운 표정속에서도 붕어빵과 오뎅을 든 사람들은 조금 더 행복해 보인다.


매주 수요일의 가마솥 순대

수요일마다 나타나는 가마솥 순대 트럭. 아줌마는 탄이를 기억하신다.

"탄이 왔네! 오늘도 순대 먹으러?"

순대를 주문하면, 아줌마는 늘 돼지 간을 더 챙겨주신다.

"이거 탄이 줘. 개들은 간 좋아해."

"감사합니다. 탄이가 좋아할 거에요."

탄이는 아줌마를 알아본다. 꼬리를 흔든다. 아줌마는 웃으며 손을 흔드신다.

"잘 먹어 탄아!"

가마솥 순대는 특별하다. 쫄깃한 식감, 고소한 내장, 편의점 순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줌마! 여기 매주 수요일마다 오세요?"

"응, 수요일은 이 동네, 목요일은 저쪽 동네,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


일주일에 한 번, 그래서 더 기다려진다. 수요일이 오면 생각난다.

"오늘 순대 먹어야지!"

탄이도 수요일을 안다. 산책길에 그 트럭이 보이면 발걸음이 빨라진다. 간을 먹을 수 있으니까.


젊은 청년의 닭꼬치 트럭

최근 생긴 닭꼬치 푸드트럭은 젊은 청년이 운영한다. 깔끔하게 정리된 트럭. SNS 계정도 있다.

요즘 스타일의 MZ 장사꾼이다. 처음 가본 날,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처음 오셨죠? 천천히 고르세요."

메뉴판을 보니 다양했다. 매운 맛, 달콤한 맛, 갈릭 맛, 데리야끼 소스의 달콤한 맛으로 고른다.

"달콤한 맛으로 두 개요."

초벌구이 된 꼬치에 토치로 불맛을 더한다. 거기에 익숙한 데리야끼 소스를 듬뿍 바른다.

갓 구운 따뜻한 닭고기, 달콤하면서 고소한 소스, 한 입 베어물자 입에서 살살 녹는다.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자주 오세요!" 이 젊은이의 푸드 트럭은 순대 아줌마 자리다.

매주 금요일. 또 하나의 단골 간식집이 생겼다.

친절함이 인상적인 이 푸드트럭은 열정적이고 정성스런 청년의 태도가 더 인상적이다.


그날 이후 자주 간다. 한 달에 서너 번. 청년은 이제 나를 기억한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달콤한 맛 이시죠? "네! 오늘은 세개요."


청년은 꿈이 있다고 했다.

"나중에 매장 내고 싶어요! 지금은 푸드 트럭이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된 가게로요"

응원한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이면 분명 성공 할 거라고. 그 날이 오면 나는 첫번째 손님이 되고 싶다.


지하철역 앞 군고구마 할아버지.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길가에 풍기는 고소하고도 달콤한 냄새.

그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이제는 거의 보기도 힘든 군 고구마 아저씨가 있다.


장작이 아니라, 전기로 구워지는 군 고구마는 이제는 편의점에서 사먹는 간식거리가 되었다.

그렇지만, 어린시절, 따뜻한 아랫목에서 먹던 군 고구마는 든든하게 배를 채우던 소울 푸드였다.

내복바람에 외투만 걸치고 동네입구, 장작불에 구워지던 군 고구마를 사러가면, 귀가 덮이는 모자를 쓴 할아버지는 덤으로 하나 더 누런 비료봉투에 넣어주셨다. 가족들과 함께 김장김치와 동치미에 얹어 먹은 기억은 지금도 냄새를 따라 군 고구마 아저씨에게 찾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가격이 올라 이제는 5000원에 두개 정도밖에 안 되지만, 든든한 한끼 군 고구마는 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다.

껍질을 벗기면 드러나는 그 속살을 한입 베어물면 꽉 찬 고소함과 뜨끈한 덩어리가 달콤하게 입안을 가득 채운다.


계절의 리듬처럼 아저씨는 여름에는 가게에서 다른일을 하다 겨울에 군고구마 통을 들고 거리로 나오신다.

겨울이 오면 나타나고, 봄이 오면 사라지는 계절의 흐름은 어느새 아저씨와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길거리 음식의 온기

동네 길거리 음식의 매력은 무엇일까?

맛? 물론 맛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온기다. 추운 날 뜨거운 오뎅 국물 한 모금. 손에 쥔 붕어빵의 따스함. 갓 구운 닭꼬치의 김. 군고구마가 주는 포근함.


그리고 사람이다. 붕어빵 할머니, 순대 아줌마, 닭꽃 청년, 군 고구마 아저씨. 그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

"오늘 춥죠?" "맛있게 드세요." "다음에 또와요"

길거리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추위를 녹이고, 관계를 만들고, 일상에 작은 행복을 더한다.


눈 내리는 날의 행복

눈이 내린다.

하얗게 쌓인 거리. 발자국이 찍힌다. 탄이와 걷는다. 추워서 코가 시렵다. 손이 시렵다.

사거리 코너가 보인다. 붕어빵과 오뎅 포장마차. 김이 피어 오른다.

"붕어빵 4개, 오뎅 두개요"

할머니는 웃으며 붕어빵을 굽는다. 기계가 돌아가고, 달콤한 냄새가 퍼진다. 오뎅 국물을 종이컵에 담아주신다.

"춥지? 이거 마시고 가."

"감사합니다"


오뎅 국물을 한 모금. 뜨겁다. 달다. 몸이 녹는다. 탄이를 안아든다. 탄이는 내가 다 먹을 때 까지 얌전히 기다려준다. 이런 순간이 좋다. 거창하지 않은, 특별하지 않은, 하지만 완벽한 순간. 눈 내리는 날, 길거리 음식 하나로 행복해지는 것.


동네의 맛, 동네의 사람들

길거리 음식은 동네의 일부다.

매주 수요일 순대 트럭, 사거리 코너 붕어 빵, 지하철 역 군 고구마. 새로 생긴 닭꼬치 트럭

그들은 동네 풍경이고, 동네 사람들이고, 동네의 맛이다.


나는 멀리 가지 않는다. 유명한 맛집을 찾아 차를 타고 가지 않는다. 그냥 동네를 걷는다.

탄이와 산책하며, 출퇴근길에, 장 보러 가는 길에.

그리고 마주친다. 김 모락모락 나는 푸드트럭. 따뜻한 미소로 맞이하는 사람들. 작지만 확실한 행복.

겨울은 추워도 괜찮다.

동네 길거리 음식이 있으니까. 붕어빵과 오뎅과 순대와 닭꼬치와 군고구마가 있으니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행복은 가까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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