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에 예민한 건 저뿐입니까.
누구나 배려 없는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험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게서, 충고를 가장한 언어폭력을 하는 연장자에게서, 기분에 따라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친구나 애인에게서 등. 우리는 존중받지 못하는 다양한 순간들을 경험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자주 경험하면서도, 유독 마음이 거칠어지고 예민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상대방이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에 사과하지 않고 넘어가는 순간. 이럴 때 나는 유달리 뾰족해진다.
특히 드문드문 끊어지는 카톡만을 바라보며 언제 도착하는지도 모르겠고,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날의 체감 온도를 그대로 느끼며 서있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나의 마음속은 파도가 일렁이다 못해 폭풍우가 분다. 쉽게 가라앉지 않는 화를 꾹꾹 참고 있을 때 도착한, 무려 한 시간을 꼬박 기다리게 만들었던 친구는 그때 내 얼굴이 야차와 같다고 표현했었다(!).
어찌 보면 그날 늦을 수도 있다며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재차 반복될수록 나는 상대방이 시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넘어 나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느낀다. ‘내 시간’을 함부로 사용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다리는데 최소 10분에서 한 시간을 넘는 시간까지. 내가 무엇을 해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음을 그들은 자꾸 잊는다.
심할 경우는 늦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이도 안되면 화를 내보기도 했다. 그런데 분위기만 험악해져서 함께 하는 내내 말이 없어지거나, 더 이상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생겼다.
최근에는 절충안으로 약속 장소를 서점이나 카페로 많이 잡는다. 서로가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는데 불편함이 없는 곳으로. 대부분의 경우 먼저 도착하는 건 나이기에.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마저도 챙겨간다. 여전히 커피가 나오자마자 상대방이 도착한다던지 하는 사소한 문제점은 있지만 더 이상 내가 친구의 말처럼 야차나 도깨비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만족한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한지 아직도 나에게는 어려운 숙제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시간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여전히 남아있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