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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북 Jan 06. 2024

'착하다'는 말 어떻게 들리나요.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던 나의 과거에 대해

착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알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어른들도 칭찬의 의미로 사용하셨지 싶다. 하지만 꽤 오랜 기간,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서까지 나는 ‘착하다’는 단어에 갇혀 살았다. 이 말이 어른들의 말씀에 무조건 끄덕이며 믿고 따를 때 주로 주어지는 훈장이라는 것을 안 건 비교적 최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그때는 국민학교였다) 엄마는 아주 모처럼 나를 학교로 마중 갔더란다. 사실 엄마는 딸을 강하게 키우고 싶어 하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보통 학교를 혼자 보내는데 그날따라 이상하리만치 가고 싶으셨다고 했다. 그리고는 곧 두 눈을 의심하셨다. 하굣길에 다른 친구가 휘두르는 신발주머니에 계속 얻어맞으면서 걸어오는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빠르게 나에게로 다가와 친구와 나를 분리한 뒤 물었다. 왜 친구를 때리냐며 다그치듯 묻는 엄마에게 그 친구는 나와 서로 장난친 거라며 오히려 당당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건 엄마가 가장 화나는 순간이 아니었다. 그 순간은 엄마가 내 손을 꼭 잡고 온 집에서 이어졌다.


“왜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어?”


엄마가 묻고 싶은 질문은, 꼭 알고 싶은 건 바로 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격양되어 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선생님한테 말했는데, 선생님이 걔가 날 좋아해서 그렇다고, 이르는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이래.”


근데 난 걔가 날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아팠어.라고 덧붙이는 딸에게 엄마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무슨 생각이 가장 먼저 드셨을까, 어떤 기분이셨을까. 성인이 되어서 감히 생각해 본다. 나의 신발주머니 괴롭힘 사건은 그날 하루의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기를 귀찮아한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착한 아이였다. 아니 바보였을지도 모른다. 폭력을 어른의 말씀 하나로 참아내는 그런 바보.


엄마는 아직도 가끔 이때의 이야기를 하신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한 게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착하다고 한 게 그런 게 아니었는데(엄마는 내가 동생을 돌봐줄 때면 착하다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셨다), 하며 아직도 속상해하신다. 내가 착한 아이 증후군에 가까웠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께 버려진다고 생각했을 만큼 착하다는 칭찬이 최고인 줄 알았던 나였다.


어른이 되어보니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착하다’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 이득을 얻을 때 주로 사용되는 말.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호구’라는 단어와 ‘착하다’라는 말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착하다는 단어의 뜻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의미이다. 이 아름다운 단어를 주관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없길, 단어의 뜻으로 온전히 사용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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