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북 Jan 11. 2024

늦은 깨달음 속에서

사랑하는 나의 엄마

엄마와 아빠, 남편, 그리고 나까지 4명이서 하는 오랜만의 외식이었다.


“엄마가 내일 모임 있는데, 그거 좀 주고 가.”


엄마는 내 가방을 보며 말했다. 솔직히 그다지 예쁜 것도, 비싼 것도 아닌 가방이었다. 그저 해외여행 가서 10만 원 정도 주고 산, 데일리용.


평상시 모든 것을 아끼고 또 아끼는 엄마임을 알고 있기에 순순히 알겠다고 하는 한편,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좋은 가방 몇 개 장만해도 될 텐데, 싶은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모두가 가장 좋은 옷과 가방으로 무장하고 나올 내일, 엄마만이 어색하게 서있는 건 아닐까 나 홀로 걱정도 되었음은 물론이다.


가방을 엄마에게 내어주고 빈 종이 가방에 내 짐을 달랑달랑 넣어 가는 길, 어느 책에서 ‘엄마 아빠는 그런 삶을 욕심내지 않고 살았다.’라는 문장을 보고 마음이 일렁여 기록해 두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엄마에 대입해 본다. 온수 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리면 보일러가 작동한다며 겨울에도 가장 찬물로만 손을 씻고 양치하는 엄마, 집안을 돌며 안 쓰는 콘센트는 정말 한 개도 남김없이 뽑아두는 엄마, 세탁기로 옷을 빨면 상한다며 아직도 가능하면 손빨래를 하는 우리 엄마도 어쩌면 욕심내지 않고 살기 위해 애쓴 것은 아닐까.


나는 결혼하고 나서 아주 조금 철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오롯이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살았다면, 결혼하고 아내로서의 역할을 가지면서는 시야가 조금 넓어졌다. 정확히는 부모님을 ‘나’의 부모님이 아니라 각각 한 사람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한결같이 ‘나’의 엄마라고만 생각하며 살았던 단 한 사람이 딸이자, 친구이자, 손녀이자, 아내이자, 엄마일 수 있음을 마음속 깊이 깨닫는데 3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럼에도 내가 그 사실을 머리로만 알고 지낸 건, 엄마가 '나'의 엄마로서 너무나 충분하고 넘칠 만큼의 역할을 해주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동생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까지 서로 손만 잡으면 생각이 전해진다 믿었다고. 소원을 생각하고 엄마 손을 꼭 잡으면 엄마가 그 생각을 알아줬기 때문이라고. 엄마가 우리에게 어떤 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던 그 말이 참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집안의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셨음을 알기에 이제는 내가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화도 자주 드리고 얼굴도 더 자주 보면서. 덕분에 최근에는 엄마와 사진도 많이 찍고 감정 표현도 자주 한다. 반가움의 포옹과 헤어질 때 항상 사랑한다고 말하는 모녀의 시간이 너무 짧지 않기를. 내가 너무 늦게 깨닫지 않았기를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착하다'는 말 어떻게 들리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