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강아지똥
박치순 선생님은 6학년 선생님들 중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어요. 학교에서 유일한 남자 선생님이었거든요. 박치순 선생님 반이 되면 축구도 많이 할 수 있고, 고무줄도 실컷 할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선생님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을 웃겨주었거든요. 젊었을 때 연극부였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찌나 실감 나는 이야기꾼인지 몰라요.
박치순 선생님을 좋아하는 건 서연이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6학년이 되면서 제발 한 번은 남자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정말 마침 박치순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된 것 아니겠어요?
박치순 선생님은 우리가 쓰는 일기를 좋아했어요. 선생님은 매 아침마다 학생들 일기에 긴 글을 남겨주셨죠. 그게 좋아서 서연이는 매주 일기 쓰는 게 좋았어요. ‘이번 주는 어떤 내용으로 일기를 쓰지? 아, 이번엔 이걸로 써야겠다!’ 집에 가는 길에도, 친구하고 놀다가도 종종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날 아침도 일기검사를 마쳤다는 것을 알리듯 선생님이 큰 소리로 말씀하셨어요. "자, 얘들아. 우리 반에 글을 정말 잘 쓰는 친구가 있는데 알고 있니?" 책 읽느라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교실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어요.
"오늘은 선생님이 서연이의 일기를 읽어줄게."
아, 맞아요. 그 일기는 어제 알람시계를 가지고 놀다가 쓴 건데, 제가 그 어떤 날보다 신이 나서 쓴 글이었어요. 쓰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 칸이 좁은 6학년 공책 두 쪽을 꽉 채우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글을 반 전체에게 읽어주겠다니요!
삽시간에 서연이 얼굴이 빨개졌어요. 아직 학생들이 각자 읽던 책에서 서연이 글로 관심을 옮기기도 전이었는데 말이에요. 서연이는 부끄럼이 많은 학생이었거든요. 박치순 선생님이 서연이 글을 실감 나게 읽기 시작한 건 마치 서연이에겐 자기가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만 같았어요. 그리고 친구들은 온전히 서연이 이야기에 집중했죠. 음, 쑥스럽지만 기분이 좋았어요.
"알람시계 하나로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단다. 서연이에게 박수."
와, 나의 생각을 친구들에게 보여줘도 괜찮은 거군요!
그때부터 서연이는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뭐, 꾸준히 썼다거나 자주 썼다거나 많이 썼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때 내가 누구인지 알아봐 준 박치순 선생님이 좋아서, 그 순간이 좋아서,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그렇게 서연이는 지금도 글을 쓰면서 내가 내가 되는 기분을 느낀답니다.
-끝-
[강아지똥] 권정생 지음, 정승각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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