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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Aug 12. 2024

무채색의 뉴욕

지난주. 잠깐 들렸던 갤러리 한켠에 걸려있던 그림의 제목은 ‘뉴욕’이었다. 갈색 벽돌을 층층이 쌓아 올린 건물의 외벽이 무슨 넓은 판 마냥 그림의 8할을 편평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 외벽 바깥으로 회색 철제 계단들을 앙상하고 납작하게 표현, 간간히 있는 작은 창문에는 사람 하나 없다. 그림 위쪽에 간신히 보이는 하늘은 우중충한 회색빛 하늘색.     


같이 간 친구가 대뜸, ‘난 저 그림이 제일 이해 안 돼. 뉴욕. 저게 무슨 뉴욕이야.’

내 눈이 똥그랗게 커지며 ‘저게 뉴욕이지. 저거 완전 뉴욕이야.’

설왕설래하는 우리가 재밌었는지 옆에서 조용히 찍은 친구 3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긴 진짜 뉴욕을 설파하는 나의 흥분한 표정.    


친구가 생각한 뉴욕은 그런 거겠지.

또각또각 하이힐을 신은 커리어우먼과 정장을 빼입은 증권가 사람들의 바쁜 걸음.

금융, 연극, 디자인, 현대미술, 재즈, 클래식, 스타트업, 영성, 법, 경영, 학문, 비영리기구, 국제기구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여드는 곳.

연말과 새해에는 초대형 초호화 이벤트가 연일 펼쳐지는 곳.

사랑과 낭만, 꿈과 희망이 넘실대는 곳.    


하지만 뉴욕은 저 그림 속 200년은 족히 됐을, 맨해튼에 흔하디 흔한 그 갈색 벽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작은 공간, 그 안에 있다. 룸메가 집을 한 3일은 비워야 내 룸메가 없나 싶은 각자의 작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각자의 삶. 세탁기가 들어갈 자리가 없을 만큼 작은 공간. 세탁기 그리고 건조기를 돌리러 지하 1층 공동실에 내려가곤, 바싹 마른 빨래를 꺼내는 건지 무미건조한 내 삶을 꺼내는 건지 헷갈리는 삶.     


그렇게 나는 뉴욕에서 나를 더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급행 지하철을 타고 내려가면 20분이면 도착하는 맨해튼의 최고 번화가에 가본 적을 손에 꼽는 2년이라는 시간. 대신 쌓아놓은 책과 끝없는 논문들에 나를 파묻었다. 더 냉철하게, 더 날카롭게, 더 철저하게. 그러다 눈을 들면 밖엔 눈이 쌓여있는데, 차갑디 차가운 눈이 외려 따뜻하게 느껴지는 사무치게 고독한 날들.

    

Community building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듣지만, 커뮤니티의 c도 안 느껴지는 뉴욕의 공기는 공허하고 허황됐다. 학교 앞 허름한 카페. 언젠가 이민 왔을 이탈리안이 운영하는 작고 낡은 이 카페의 나름 고급지면서 싸구려인 커피와, 말투에 악센트가 담긴 주인아주머니의 몸짓. 커뮤니티 빌딩이라는 학교 표어에 대해 고민해본 적도 없을 그녀가 오히려 유대감을 만들고 있다는 아이러니.    


이 모호함을 안고 나는 센트럴 파크로 간다. 모든 자연을 아스팔트로 덮어버리고, 건물 한 칸 한 칸을 아닌 척 욕망으로 가득 채우곤, 더 더 욕망하도록 만든 맨해튼에서, 그 중심에 여의도만 한 땅을 건드리지 않고 자연으로 남겨두었다. 난 이 센트럴 파크가 사실 맨해튼의 본질이라고 믿고 싶어 그곳을 찾아간다. 그리고 내가 매번 앉는 그 돌, 널찍한 돌 위에서 세월을 네월을 보내고 다시, 그 작은 공간으로 돌아온다.    


누군가에겐 화려함, 열정, 희망, 꿈일 뉴욕은 내게 무채색의 고독.        


뉴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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