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연우 Feb 07. 2023

초대박으로부터 멀어져 버린 꿈

황금알이 깨지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말,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사람들을 만나기가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힘들었지만 그 시절 누구나는 한 번쯤 해봤을 주식의 호재로 인해 갑작스러운 경사가 우리 집에도 잠깐 찾아왔었더랬다.

평생 내 눈으로 확인해보지 못한 숫자를 남편이 봤다는 이야기로 무척이나 들떠있었던 그때, 초대박의 유혹과 더 큰 야망을 가진 남편은 점점 더 그 세계로 빠져 들었다.


투자에 대해 완전 무지의 아내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에서 수익금이 생겼을 때 일부는 떼어놓는다던지 원금은 빼고 수익금으로만 해라라고 몇 번을 권유하며 안정적인 투자를 권했건만 꺼지지 않는 불타오르는 열정을 가진 전투적 성향의 남의 편은 시드를 늘려야 벌어들이는 게 고 빠르다며 밤낮 할 것 없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투자자로서의 길을 걸으려 했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싸인 아내는 계속 말려도 봤지만  이야기는 남편의 귓등은 고사하고 근처도 가지 못한 채 허공으로 날아가버렸다.

언제부터인가는 퇴근 후 남편의 표정을 보면 오늘 하루 투자의 결과를 물어보지 않아도 확인이 가능했는데 남편의 기분은 빨강과 파랑을 오가는 그래프처럼 업다운이 심했다. 그럴 때면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남편의 기분을 살펴야 했고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런 시간들을 무려 1년 넘게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는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아도 대답은 없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말해준다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갑자기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일 텐데 얼마나 큰 사건이기에 문을 잠그는 것일까... 어찌 된 사연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안절부절못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밤이 지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남편은 잠시 이야기하자는 소리를 했고 그 순간 내 가슴은 쿵쾅쿵쾅 방망이질을 해댔다.

남편은 자신이 얘기하는걸 잘 들으라며 자리에 앉으라 했다. 숨죽이며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잠자코 있는 나에게 남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이제 그만할게. "


  "그리고 아무것도 남은게 없어."


아. 무. 것. 도. 없다고?


그 짪은 이야기를 들은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했다. 

'투자로 벌어들인 이익금뿐만 아니라 자신의 원금마저 날려버린 이 인간을 어떻게 해야 한담.

아..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는구나.'

이것이 정녕 꿈인가, 생시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금이 정확히 얼마인지, 실제 익본 금액은 얼마인지 제대로 모르는 체 대략 어느 정도 될 거란 예상만으로 이 상황을 듣자니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어마어마한 금액의 손맛을 본 상태에서 빈털터리가 되었으니 그의 상실감과 패배감은 과연 어땠을까. 깊은 곳에 들어가  평생 나오고 싶지 않다고 말할 만큼 한동안 깊은 절망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우리 집 근처에 한강 다리가 없다는 것이 다행일 뿐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왜 이런 사태를 만들었냐며 갖은 모진 말과 험악한 말들로 그를 벼랑 끝에 몰아세우고 싶었으나 그 투자 의도가 우리 가정을 위해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했다는 그의 변명 같지 않은 변명에 화나고 어처구니없는 이 상황을 덮기로 했다. 보지도 못하고 만져보지도 못한 그 큰 금액이 잠시 왔다가 사라졌지만 원래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오히려 괜찮다며 우리 그 돈 없어도 살 수 있다고 남편을 다독였지만 내가 그만하라고 했을 때 그만뒀으면 그 금액들이 남아 있을 텐데 그렇게 호언장담하며 큰소리치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났구나를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화는커녕 깊은 우울에 잠겨있는 남편의 상태를 매일 확인하며 정신상태를 무장해 줘야 하는 나는 이미 날아가버린 돈에 대해 생각해 봤자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며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말을 듣지 않은 남편의 최후는 이렇게 결말을 맺었다.

사실 중간에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많았으나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못 가서 시부모님이 알게 되셨다. 나보다도 더 화를 내시며 아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과 실망을 감추지 않으시고 마구 쏟아내셨다. 나는 내 마음속의 화들을 대신 다 쏟아내 주셔서 감사했다. 처자식을 생각하지 않고 무모한 짓을 한 아들을 혼내시는 모습에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된 것은 너에게도 책임이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나 서운하고 알 수 없는 화가 났다. 아내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나도 모르게 시작한 투자의 결과가 이렇게 났는데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나도 피해자인데... 아버님의 그 말씀은 한동안 내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아 잊을만한 하면 자꾸 떠올라서 나를 힘들게 했다.




이번 설연휴 집으로 돌아오기 하루 전, 모처럼 아버님과  시간 동안 이야기를  기회가 있었다.


"도대체 얼마를 잃어버린 것이냐? 가 제대로 이야기를 안 한다."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질문에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정신 바짝 차리고  대답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잘못했다간 부자간의 다툼을 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 저도 정확한 금액은 잘 몰라요. 대략만 알고 있을 뿐이지. 아버님 그런데 이제는 안 한다고 하잖아요. 믿어주세요. 제가 옆에서 잘 지켜볼게요."


"처자식이 있는 놈이 그런 짓을 하다니! 내 자식이지만 정말 실망스럽다. 내가 지난번에도 너에게 말하지 않았냐. 너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진작에 그런 일을 알았을 때는 애들을 데리고 못살겠다고 나왔어야지! 그래야 저 놈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남편은 사실 같은 일로 2번의 사고를 크게 쳤다.


"네????"


아버님의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그 말씀은 바로 이런 뜻이었구나.


"아니... 뭐.. 이런 일은 사실 이혼사유감이라고... 안 그래도 저 사람한테 얘기했었어요.... 그런데 불쌍하잖아요. 이제 마음 다잡고 산다고 하는데요."


"다음번에 혹시 이런 일이 생기면 애들 데리고 아버님댁으로 바로 올게요. 하하하"


아버님의 말씀에 이렇게 답변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어오신 어머님은


"며느리한테 소리 하네."


하며 한마디 거드셨다.


'사실 전 괜찮은데요. 아버님 말씀에 힘을 얻었다고요.'


'아하! 아버님이 내 마음을 이해해 주시는구나! 정말 당신의 아들이라고 감싸시는 건 아니구나.'


한동안 아버님의 그 말씀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는데 이번 대화로 인해 나만의 오해가 풀렸다. 그렇게 난 아버님과의 독대 자리에서 위로를 얻었다.




토요일 저녁 밤 8시 35분.

로또 당첨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번 1등은 40억씩 총 7명이 당첨되었단다.

1등에 당첨된 저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남편과 함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품으며 앞으로 늘어갈 황금알을 상상하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마구 이야기했을 때가 있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엄청 행복했었던 그 시절.

멋진 차를 사고 가지고 있는 빚도 모두 청산하고 이번 방학 때는 해외여행을 어디로 갈지 생각하며 생계형 직업으로서가 아닌 자아실현형 직업으로서  이제 맘 편히 살 수 있겠구나를 생각했었던 그 시절이 꿈만 같다.


내가 예전에 챙겨보던 유명한 투자채널 유튜버는 종종 이렇게 말했었다.


"수익이 났을 때 그 돈으로 차사고 아파트 산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수익금도 못 빼고 계속 가지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


이 말을 내가 실제 체득하게 되다니.


지난 일을 가끔 생각하면 그때 남편을

꼬드겨서 내 몫을 미리 챙겼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젠 부질없는 일이다.

정신 차리고 그냥 현실을 열심히 사는 수밖에.


*사진출처- 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방학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