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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Aug 13. 2023

다시는 받고 싶지 않은 남편의 선물

꼭 전해줘야만 했니?


2주 전 일이다.

우린 3주 가까이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는 서로 본 듯 만 듯했다. 새로운 사건들과 꼭꼭 눌러 담은 그 이전의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와 도무지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기미조차 없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며칠 동안 서로가 서로를 투명인간 보는 날들 속에서 그는 나를 붙잡았다. 하고 싶지 않은 대화,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들, 반복적인 이야기들로  시간 동안 릴레이 싸움이 진행되었다. 이번엔 제법 진지하게 기나긴 싸움을 이어갔지만 결국 끝은 맺어야 했다. 어떤 식으로든.


남편은 논리 정연하고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논리나 앞뒤 맥락이 맞지 않으면 파고드는 피곤한 성향. 나름 나도 꽤나 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에 맞서려면 무척이나 고되지 않을 수 없다. 얽히고설킨 매듭을 겨우 해결한 우리는 감정 탈진 상태였다. 꽤나 힘들었고 마지막은 이렇게 다툰 서로가 안쓰러웠다.


남편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부부싸움 속에 나름 눈치를 봤었을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난 내 주변과 아이들의 마음을 돌아봤다.


오랜만에 감정적 평화가 찾아오고 남편은 그동안의 싸움에서 나에게 깊은 전우애라도 느꼈는지 그가 내민 손길과 말투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밤새 그와 내가 서로에게 사랑의 손길 탓에 다음날 일어난 우리 부부는 무척이나 피곤했다. 정신없이 짐을 챙겨 출근하는 남편을 나는 오랜만에 따뜻하게 배웅했고 현관문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온 그는 진한 모닝키스를 하고 떠났다.


퇴근하고 저녁 늦게 돌아온 남편은 하루 종일 힘들었다고 했다. 속도 울렁거려서 점심도 못 먹었고 열도 나는 듯한다고 했다.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든 나는 정신없이 코로나 키트를 찾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를 한순간 나타난 선명한 두줄.

코로나 검사 키트기의 선명한 두 줄

코로나가 다시 찾아왔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 같았던 코로나가 찾아왔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직접 대면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므로 남편에게 다음날 바로 수액 맞을 것을 권했다. 부은 목을 바로 가라앉힐 수 있고 게다가 몸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나의 말대로 수액을 처방받았고 몸상태가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회복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며칠 후 아이들과 뜨거운 여름맞이 물놀이를 재미있게 즐기고 돌아온 나는 목안에 뭔지 모를 따끔거림을 느꼈다. 혹시 나도 코로나?라는 생각이 들어 검사를 했다. 결과는 역시 두줄. 놀란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야, 어떻게 해! 나 두 줄 나왔어"

"뭐라고? 두 줄?"

깜짝 놀란 남편이 물었다.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이야?"

"아니, 무슨 임신이야? 코.로.나. 두 줄이라고!"

"깜짝 놀랐잖아! 뭐가 두 줄인지 정확하게 말했어야지. 암튼 다행이네. 당신도 얼른 병원에 가서 수액 처방해 달라고 해. 목 아픈 것이 빨리 가라앉더라. 알았지?"

"어. 알았어."

코로나 검사 두 줄을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이라고 이해한 남편 때문에 혼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이런 무슨 망측한 상상인가.


병원에 마스크를 쓰고 가서 코로나 때문에 왔다고 하니 접수를 해주는 간호사는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집에서 검사를 했고 두 줄이 뜬 검사키트도 가져왔다고 하니 그래도 다시 해야 한단다. 또다시 긴 면봉으로 내 콧구멍을 사정없이 밀어 넣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지만 어찌하겠는가. 간호사는 역시나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기다란 면봉을 최대한 짧은 시간에 콧속으로 쑥 집어넣었다. 결과는 역시 두 줄.


진료실에 들어가 처방을 기다리는 나에게 의사는 말했다.

"에고.. 코로나에 두 번째 감염되셨네요. 입원하시겠어요. 아니면 약물 치료하시겠어요?"

"입원이요?"

"네. 코로나로 입원하면 4일 동안은 무료입원이 됩니다."

코로나로 무료입원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입원은 안 하고 그냥 집에서 약 먹고 쉬겠다고 했다. 그리고 수액도 처방해 달라고 했다.

"겠습니다. 그럼 7일 약처방과 수액 처방해 드릴 테니 밖에 나가서 잠시 기다리세요."

"네. 감사합니다." 하며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의사는 밖에 있는 간호사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팍스로비드요!"

팍스로비드? 난 내 두 귀를 의심했다. 팍스로비드를 처방한다고? 처방전을 받으러 간 나에게 간호사는 동의서 한 장을 내밀었다. 혹시 지병으로 따로 먹고 있는 약들이 있는지 물어보는 질문들이었다. 남편은 팍스로비드를 처방받아오지 않고 일반 감기약을 처방받아 왔었는데 난 왜 팍스로비드를 처방해 줬는지 의아했다. 궁금했던 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거 팍스로비드 제가 처방받아도 되는 약인가요?"

"부작용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

말끝을 흐리는 나에게 처방전을 주며 간호사는 말했다.

"처방비는 비싸지 않아요. 저렴합니다. 약국에 가셔서 약 받으시면 됩니다. 먼저 수액실로 가세요. 수액 놓아드릴게요."

팍스로비드 처방에 찝찝한 기분이 가득한 채로 수액실로 들어가서 한 시간 넘게 수액을 맞고 나왔다.

코로나 확진 후 수액 맞다

약국에서 TV 또는 인터넷으로 보았던 팍스로비드를 처음으로 봤다. 먹는 방법을 설명하는 약사에게 이 약을 꼭 먹어야 하냐고 물었다. 확답은 피하는 대신 약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도 처방해서 먹는 약이에요. 요즘에는 젊으신 분들에게도 처방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도 먹고 낫는 약인데 젊으신 분이 드신다고 해서 큰 부작용이 있으면 처방하겠어요? 혹시 불안하시면 같이 처방된 감기약만 드세요."


처방해준 팍스로비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부작용이 걱정돼서 일반 감기약만 먹기로 했다. 수액은 맞았지만 목아픔은 5일 동안이나 지속되었고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에는 작년처럼 무기력증과 어지러움증도 찾아왔다. 다행인 건 열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과 입맛은 없지만 음식을 조금씩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격리기간이 5일로 짧아진 것이었다.




어제 학원에서 돌아온 막내가 머리가 무겁다고 했다. 미열도 있는 것 같다해서 열을 재보니 37도가 넘는다. 불안한 마음에 코로나 검사 키트를 꺼내 검사해 본다. 역시나 두줄. 코로나다.


나와 남편을 휩쓸고 간 코로나가 이젠 막내에게 전해졌다. 남편이 나에게 전해준 진한 사랑의 징표가 이어지고 있다. 끈질기다. 코로나 이어달리기는 도대체 언제 끝나려나.  막내의 증상은 아직까지 거의 없다. 잠깐동안의 열을 제외하고는 아프지 않단다. 첫째 둘째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해 봤다. 그들은 아직 아니다. 제발 그 사랑의 징표가 첫째, 둘째에게는 도착하지 않길 바라며.


*사진출처: 작가 본인의 사진임.

*대문사진출처: Unspl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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