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네도키 뉴욕으로부터 (에필로그)
내 인생은 무언가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시작된 것 같았다. 지루하기만 했던 학창 시절엔 방구석에 앉아 영화를 보는 것으로 대신했고, 돈이 없는 대학 시절엔 개그감이 전혀 없는 나였지만 누군가 웃겨보겠다고 소극장으로 숨어들어 개그 연기를 했다.
영화가 하고 싶었음에도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이 무서워 혼자 글을 쓸 수 있는 매거진 에디터를 직업으로 삼았고 그마저도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혼자 고립될 수 있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회피에 회피에 회피를 한 결과 나는 지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이 됐지만,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회피를 하지 않고 무언가를 마주 볼 자신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 <씨네도키 뉴욕>이라는 영화에 한 장면에선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들은 운명이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운명은 있다. 그건 내 스스로가 만든다. 시간은 영겁으로 흐르겠지만, 당신은 찰나의 순간만으로 이곳에 존재한다. 당신은 평생을 후회하거나,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기겠지란 생각으로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고립감을 없애줄 무언가가 생기겠지란 생각을 하면서.
진실은 슬프다. 진실은 내가 그 순간 많은 아픔을 느껴왔다는 것이고, 나 조차도 그것을 외면해 왔다는 것이다."
도망가고 피하는 것은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나약한 방법이다.
간단하다.
도망치면 그뿐이라는 생각은, 늘 도망만 다녔던 나에게는 마음 편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괜찮은 척을 해야 했다고 말하는 <씨네도키 뉴욕>의 한 장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든다. 괜찮지 않으면 어찌할 방도가 없다. 내가 괜찮지 않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건 없다.
올봄, 내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게 됐다. 아직 젊은 나이였기에 죽음이란 단어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나는 큰 수술을 했고, 그 수술 이후에도 살 수 있을지 아닐지는 의사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모두가 하는 치료를 나는 거부했다. 치료를 해도 살 확률이 없다면 나는 영화에 나온 대사처럼, 그냥 찰나의 순간만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그래, 그럼 이 순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선택지는 삶 아니면 죽음일까.
나에겐 선택지가 하나 더 있지 않나.
언제나 그렇듯 나는 같은 선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