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키워드
여름옷
앞마당에 뿌린 차가운 물이 순간 청량감을 느끼기도 잠시, 뜨끈한 열기가 다시 땅덩이를 데울 때쯤 전화가 울린다. 이번 주는 장모님이 병원에 갈 테니 박서방은 아이들 데리고 근처 유원지라도 갔다 오라며 연신 신신당부를 하신다.
오랜 병간호 끝에 박서방까지 쓰러지면 큰일이라며 곰국 한솥 끓여 병원으로 갈 테니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천천히 좀 쉬다 오라는 말씀이 박 씨에게는 작렬하는 햇빛도 녹이지 못하는 힘겨움을 눈 녹듯 녹게 했다.
수개월째 병원 생활로 몸도 마음도 지쳐감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려고 버티는 환자 앞에서 아이들과 놀러 다녀온단 말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는데 순이는 다녀오라며 손짓을 보냈다. 9살도 안된 아이 셋을 데리고 막상 어델 가려하니 막막하기만 한 박 씨는 고향에 내려가 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모를 묏자리를 미리 점검해 두는 차도 있었지만 발목을 다쳐 거동을 못하는 엄마도 한번 들러볼 겨를이었다. 근처 냇가에 물이 마르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첨벙 대도 좋을 곳도 있어 한나절 시간 보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예상 밖의 소풍에 철없는 아이들은 덜컹대는 시골길에 날리는 먼지도 마다하지 않고 창문을 반쯤 열고 콧노래를 부른다. 빨간 고추잠자리가 옥수수 밭 위를 날며 아이들을 환영이라도 하듯 날아다니고, 매미들의 싸한 울음소리가 슬쩍 불어오는 나무 그늘 바람에 묻어 시멘트 병원 복도에서 보는 여름과는 다른 느낌에 박 씨는 병실에 누워있는 아내가 더더욱 생각난다. 다음 여름은 같이 올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날까 하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팔과 다리까지 소매를 걷어붙이고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한껏 멋을 부리며 이 세상을 다 얻은 것 마냥 카메라 앞에서 씩 웃는다. 함께 오지 못한 엄마에 대한 걱정도 아쉬움도 잊은 채 오랜만에 바깥 구경에 신난 재잘거림이 여름 밤 별빛에 묻어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별은 돌아오는 길 헛헛함을 달래어주었다.
며칠 뒤 인화한 사진을 순이에게 보여주며 아이들이 신나 해서 좋았음을 이야기하는데 순이는 왈칵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의 얼굴은 환하기 그지없는데 땀범벅이 된 모습에서 철 지난 가을, 겨울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있는 힘을 다해 박 씨에게 한마디 건넨다.
“여보, 엄마더러 아이들 여름옷 정리 좀 부탁해줘.”
그제야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들이 입원 전에 아내가 마지막으로 손길이 닿았던 흔적임을 알게 되었고 박 씨는 걱정 말라며, 그리고 얼른 나아서 아이들 여름옷 사러 가자며 두 손을 꼭 잡은 채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고 씩 웃어 보였다.
pinkpen@mindmap.anna
피서 Vs. 썸머 캠프
얼마 전 줌 미팅에서도 그렇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모임에서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여름에 휴가 어디 다녀오셨어요?”이다. 이미 일찍 휴가를 당겨서 사용했다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막 다녀와서 여운이 남아있는 휴가 얘기를 신나서 나누기도 했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우리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게 많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먹고 살기 넉넉해져서 “열심히 일한 당신 어디든지 떠나라”라는 멘탈리티가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까. 휴가에 대해서 시큰둥하게 반응하거나, 휴가 계획이 없다고 말하면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왜 그렇게 일만 하고 쉬지 않는 거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한국에 살 적에는 악착같이 돈 모으고 휴가 모아서 여름마다 해외여행 나가는 게 목표이고 소원이었다. 또, 해외에서 보내는 휴가는 사회적, 경제적 척도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캐나다에서의 매일이 여행이고 일상이 소풍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미 누군가의 휴가지에 영구적으로 살고 있으니 일상이 여행이고 소풍인 게 맞다.
처음 캐나다 왔을 때의 우리 아이들의 어릴 적 여름을 떠올려 보니, 아이들은 참으로 열심히 썸머캠프에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 불현듯 나의 어릴 적 여름을 떠올려 보았다.
지난주에 엄마랑 통화를 하다가 엄마가 아빠에 대한 불만을 토해 내셨다. 그리고 아빠 생각이 났다. 자연스럽게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려 보니, 일평생 성실하게 일만 하시고 휴식을 전혀 모르시던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어릴 적, 아빠에게는 휴가는 사치이고 허영심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게 일 밖에 모르고 열심히 앞만 보고 사셨는데, 지난 세월에 대한 덧없음에 허무해하시는 아빠가 안타까웠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온 가족이 처음으로 설악산/경포대로 여행을 갔다. 그리고 6학년 때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간 게 우리 가족여행의 전부였다. 그 이후로는 우리 가족 다섯 명이 함께 어디에 간 기억은 없다. 제주도 여행 당시 택시를 미리 예약해서 여행 내내 그 택시를 타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늘 그렇듯 관광지에 도착하면 동생과 나는 택시에서 안 내리고 그냥 계속 자면 안 되냐고 해서 아빠가 무척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라야 인터넷 블로그에서 제주도 맛집을 미리 알아내고, 맛집 선택에 실수가 없겠지만, 그 당시에는 택시 기사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겨야 했다. 기사 아저씨는 맛집이라고 소개했지만, 우리 입맛엔 영 실망스러웠던 식당들. 천지연 폭포, 성산 일출봉, 민속마을….. 모든 사람들이 가는 관광 코스니까 우리도 꼭 다녀왔어야 했던 곳들. 사진 속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고, 그때 너무 좋았었는데 하는 식의 감정의 기억이 없다.
몇 주 전, 휴가지에서 잠깐 서점에 들렀다. 그때 보석 같은 구절을 찾았다. “가족 휴가는 목적지나 여정의 스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가족 간의 애정의 유대를 강화하는 여행의 능력에, 가족을 만들기 위한 여행의 힘에 달려 있다.” 너무나 동감한다. 어디를 가느냐 보다는 누구와 함께 여행하는지가 더 소중하고, 아련한 감정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여름휴가' 기억 폴더에 저장한다.
소냐 민정 @mjk_immigration
사스카툰의 여름 그 해 그 여름
여름, 하얀 여름이 생각난다. 햇빛이 눈이 부셔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몇 해 전 읽었던 '바깥은 여름'이라는 책도 생각이 나고, 한국과 캐나다의 여름도 생각해 보다가, 10여 년 전 처음 밟은 캐나다의 여름이 생각났다. 3월에 밴쿠버 공항에서 랜딩을 하고, 날아간 이름도 생소한 사스카툰! 나의 캐나다 생활이 시작된 곳이다. 3월이 지나 어느덧 5월이 되었는데도, 그때 우리 가족은 누구도 내복을 벗지도, 겨울 잠바를 포기할 수도 없는 날씨 속에 지내고 있었다. 아이러니 한건, 우리는 겨울 옷차림인데,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이 나시에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6월이 지나가면서 뜨거운 빛이 내리쬐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뜨거운 해에 우리는 옷을 갈아입었고, 건조한 여름이 처음이라 그늘에만 가면 시원한 것이 또 어색했다. 집 앞에 호수가 있어서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여름 공원 산책 길은 거위 똥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루 살이 떼인 줄 알았던 벌레 떼는 다름 아닌 모기 떼였다. 여름 저녁에 산책이라도 할라 치면, 귀에는 윙! 소리가 멈추지 않고, 대화 중에는 입으로 모기가 들어왔다. 당황해서 달리기 하듯 집으로 돌아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뜨겁기도 잠시 장마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반 지하 같은 개념의 우리 집은 바닥에서 물이 올라왔다. 당황 그 자체였다. 그렇게 캐나다의 좌충우돌 여름이 지나갔다. 그런데 그 이후 나는 사스카툰에서 비가 많이 와서 힘들다거나, 모기떼 때문에 산책을 못 한다거나, 5월이 춥다거나 그렇게 느낀 적이 별로 없는 듯하다. 캐나다 첫해의 초여름은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몸도 마음도 너무나 추운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말도 못 하는 땅으로 이주해 자리를 잡는다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모든 것이 못마땅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해를 제외하곤 내가 살아온 사스카툰의 모든 여름을 사랑한다.
정보은 @boeun_challenge
우리만의 여름
캐나다의 여름은 참 짧다. 특히 앨버타의 여름은 더욱 짧기만 하다. 5월까지 눈이 내리는 까닭에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여름은 사실 6월부터 8월까지 딱 두 달뿐이다. 8월 중순부터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9월에는 눈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캐나다에서의 여름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게 반짝 두 달을 꽉꽉 채워 즐겨야만 하는 숙제 같은 계절이다. 어렸을 때 한국의 여름에 대한 나의 추억과 기억들 그리고 아직 코끝에 남아있는 듯한 여름 냄새를 우리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퇴근하신 아빠한테서 풍겨오는 기분 좋은 땀 냄새와, 선풍기 앞에서 먹는 시원하고 달큼한 수박의 향기, 그리고 한 여름밤 모기향과 어우러진 엄마가 쪄주신 감자와 옥수수의 향기. 잠들기 전 밤마다 모기 물린 곳에 부모님이 발라주셨던 물파스와 안티푸라민 약 냄새... 이 모든 냄새가 내가 기억하는 어렸을 때의 여름 추억이다. 갑자기 캐나다에서 태어난 우리 딸은 여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늘 비가 많았던 밴쿠버에서는 여름 내내 비 떨어지는 소리와 비 냄새, 그리고 딸기, 블루베리를 한 바구니 따러 다녔던 즐거운 추억들이 기억이 난다고 한다. 앨버타에서의 여름은 밴쿠버보다는 많다. 산으로 호수로 하이킹을 자주 다녔던 탓에 찐한 풀 냄새가 기억이 나고, 또 여름마다 자주 떨어지는 우박도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캠핑장에서 핫도그와 스모어를 해 먹기 위해 피웠던 나무 타는 냄새가 고등학생이 된 우리 딸이 기억하는 여름의 추억이다. 내가 기억하는 여름은 삶의 일상에 대한 추억이었다. 분명 부모님과 여름휴가도 갔었는데 그런 특별한 이벤트보다는 늘 여름 내내 반복되었던 평범했던 여름 생활 속 추억이다. 특별한 날이 아니었던 우리의 여름 일상이 이렇게 냄새까지 오랫동안 함께 기억되고 있다. 우리 딸이 기억하는 여름의 추억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나와 신랑이 일부러 시간을 내고 계획을 하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서 준비했던 여름 이벤트에 대한 추억이다. 개학 3주를 남겨놓고 아이들에게 어떤 여름에 대한 기억과 향기를 남겨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세월이 흐르고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우리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우리의 후손들에게 옛날에는 말이야~~~ 라며 운을 떼며 시작할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여름 일상 추억으로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것이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우리만의 여름.
패미 로열 @canada_famiroyale
금빛 찬란한 여름일지라도.....
악마와 같은 더위와 텁텁한 공기 그리고 습도를 불러들이는 여름은 결코 나랑 친구가 되지 않는다. 주위에 아이를 여름에 낳았다고 이름을 '여름'이라고 붙여준 이도 있고 아무리 덥다고 해도 물가 싸고 맛있는 거리 음식에 푹 빠져 아예 일 년의 반을 베트남에서 보내는 지인도 있다.
하지만 난 여름이 싫다
✔️덥지
✔️후덥지근하지
✔️땀나지
✔️강한 햇살은 내리쬐지
✔️알레르기는 올라오지... 이렇게 5단 콤보가 몰려오니 딱 질색이다
예전엔 여름에도 한겨울 이불을 곁에 두고 잘 정도였는데 여러 번의 수술과 호르몬 치료 후에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체중과 함께 더위 앞에서 더 이상 꼼짝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땀이 안 나던 체질이라 알고 있었는데 웬걸 이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르고 끈적끈적해지는 습도는 아토피를 불렀고 피부는 다 뒤집히곤 했다
어디 그뿐인가
잠시만 햇볕을 받아도 머리는 타들어 가는듯해서 모자 없이 외출은 불가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햇볕 알레르기에도 시달리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기 전이라도 계절 중에서 가을을 가장 좋아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꽃 보는 게 좋다 보니 봄 하고도 잘 사귀어 두었는데 이놈의 여름과는 도저히 친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더위에 작년부터 두 해째 에어컨 없이 견디는 중이다
지구 환경 살리기를 위한 나의 실천 방안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 보니 에어컨 사용을 하지 말자는 마음이 들었고 삐질삐질 땀을 흘리면서도 부채와 선풍기로 살살 달래며 지내는 중이다
하긴 이열치열이라고 더운 날 뜨거운 국밥을 땀 흘려가며 먹고 나면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요즘은 그래서인지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는 있다
워낙 월남국수를 좋아하다 보니 본토에서 먹는 월남 국수 맛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 베트남에 가서 꼭 그 맛을 느끼고 싶다'로 발전이 되었고 그게 곧 베트남 여행을 떠나고픈 마음으로 충만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시점이라 비행기 타기가 주저되긴 하나 그 언젠가는 베트남 길바닥 위에서 거리 음식을 맛보고 있을 내 모습을 그려 보노라면 괜히 즐거워지고 입가엔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도 후덥지근한 공기가 자꾸 살을 헤집고 들어오고 금빛 햇살이 이를 드러내며 따라온다.
"야-야 난 너 싫어
좀 저리 비켜 갈 수 없겠니?
여름아~미안하지만 넌
내 친구는 아니라니까."
성은@life_coaching.sue
당연하지 않은 축복의 이름, 여름
여름 아이다. 한 여름에 태어났다. 어렸을 땐 생일이 참 싫었고 원망스러웠다. 하필 여름 방학 종업식날이 내 생일이라니. 학교를 가야 그나마 반 친구들에게 작은 쪽지나 축하 인사 한마디 따위라도 받는 건데 방학을 하는 종업식이나 방학 중에는 생일을 챙겨 받기가 어려웠다. '챙김'이란 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생일 축하해' 그 한 마디, 같은 또래에게서 받는 그 인사가 그토록 간절했던 시기였다. 카톡은커녕 문자나 삐삐조차 가질 수 없었던 1990년 대의 어린이에게는 소소할지언정 일 년에 단 하루 주어지는 이벤트의 부재가 그렇게도 아쉬웠다.
그런 아쉬움 때문일까, 여름이 늘 그리웠다. 여름이 아닌 모든 계절의 순간마다 생각나는, 여름의 냄새, 소리, 온도, 습도, 조명(?) 그 모든 것을 열망했고 그리워했다. 푸른 물빛과 황금빛의 햇살이, 시원하고 뜨겁게 오버랩되는 열정적인 모든 것들. 생존을 위해 움츠려있었던 계절에서 벗어나, 뛰고, 날고, 헤엄치는 그런 유난한 생동들이 허용되는 날들. 갑작스러운 소낙비니까 마음껏 젖어도 되는 어렸던 여름은, 어른이 된 후에도 축제나 페스티벌이라는 명목 하에 어느 하루나 이틀쯤은 철없이 즐겨도 되는 어른으로 키웠다.
붉은 노을을 만날 때마다 하는 생각이 있다. 이런 순간은 앞으로 나에게 몇 번이나 더 주어질까?...... 아름다운 것과 소중한 것에 대한 내 습관이다. 여름을 만날 때도 나는 생각한다. 앞으로 내 인생에 몇 번의 여름이 남아있을까? 무릎관절이 아파서 숲을 걷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이가 시려서 더 이상 시원한 수박을 못 먹으면? 설마 또 다른 바이러스가 나타나 사람들과 함께 뛰어노는 축제가 다시 금지될까? '언젠가'와 '설마'의 걱정과 두려움 사이에서 나는 이 여름의 순간들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남은 여름을 최대한 누리고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이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어린 날이듯 올해 여름이 내게 주어진 가장 '젊은 여름'일 테니까. 여름의 이 모든 순간들을 가슴 가득 빈틈없이 꾹꾹 담고 싶다. 시원한 수박과 달콤한 복숭아를, 은은하고 매력적인 칡꽃 향기를, 여름 햇살과 만나 반짝이는 초록의 숲을, 최선을 다해 한 철을 살아내는 열정적인 매미의 세레나데를, 그리고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들을, 이 모든 당연하지 않은 축복들이 당연해지지 않도록.
황서영 https://link.inpock.co.kr/stand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