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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영 May 08. 2021

그녀의 결혼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언니, 저 결혼해요.'

이른 오전 출근 길 S가 할말이 있다고 카톡했을 때에는 결혼 이야기 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저녁시간이 아닌 이렇게 이른 시간에 그녀와 카톡하는 것도 생경했다. 갑자기? 어떻게? 누구? 머릿속으로는 수만가지 생각이 오고 가며 축하를 건내는 와중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언니가 축사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S는 대학시절, 동시대(?)의 학생들은 누구나 알만한 강렬한,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기억력이 안 좋아서 대학교 5년 기간이 모두 안갯속 놀이공원처럼 뿌옇게 기억으로 남은 나도 S와는 강렬한 기억들이 몇가지 있다. 

최초의 기억은 대학교 2학년, 당시 과대였던 M과 함께 준비한 신입생을 위한 새터(새내기 OT)에서의 기억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경영대는 꽤나 폭력적인 양으로 술을 마셨고, 생전 술을 마셔보지 않았던 새내기였던 Y는 알콜쇼크로 쓰러졌다. 나도 과대 M도 몹시 당황하고 Y를 다급히 두드리며 깨우려고 했다. 새터는 서울이 아닌 강원도의 어느곳에서 진행되었기에 - 가까운 병원은 어딘지, 병원으로 어떻게 이송해야 하지, 지방에서 올라온 Y의 가족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 S는 앰뷸런스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하고 Y와 함께 병원에서 밤을 지새우고 다시 돌아왔다. 같은 새내기이지만 빠르게 문제해결을 하는 모습, 처음 본 동기를 위해 발을 벗고 나서는 S의 모습이 대견하고 멋지고, 참 고마웠다.  


하지만 새터 이후로 Y는 딱히 S에게 고마워하지는 않는 듯 했다. S는 너무 예뻤기에 여자들 사이에서 잘 자리잡기 어려운 존재였다. 더 잘 자리잡기 위해서는 S의 피나는 생존본능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위해 딱히 노력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S는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지만 - 무리 생활안에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갈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너무 솔직했다. 

그녀는 좋은 것은 좋고 슬픈 것은 슬프고 싫은 것은 싫은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람이다. 경영대 로비 한가운데서 그녀는 "언니!"라고 하이 데시벨로 소리지르며 다가와 포옹 내지는 내 볼에 뽀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여성간의 스킨십이 어떠한 것인지 혹은 이러한 것들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는 굳이 관심없는 그녀였다. 물론 받아준 나도 다분히 그런 성격이지만. 

S는 술을 잘하고 승부욕이 강했다. 어떤것이 먼저인지 알기는 어렵다. 승부욕이 강해서 술을 잘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술을 잘하고 승부욕도 강했는 것인지. 승부욕은 있지만 다른 사람을 부리거나, 다수에게 모두 인정받고 싶은 명예욕, 권력욕은 상대적으로 적은 신기한 캐릭터.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그녀는 인류학과 석사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녀와 이야기할 때에는 내가 더 잘 분석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따뜻한 분석이었고 항상 취해있어서 그녀의 이야기들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결혼식 축사를 부탁받았을 때 여러가지 고민이 들었던 것은 S가 결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S는 사랑에 온 힘을 다하는 사랑꾼이었다. 그냥 밍숭맹숭하게 오랜 연애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담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연애들은 불같기도 하고 어떨때에는 헤어나오기 어려운 늪 같기도 했다. 30대가 된 이후 만족스럽지 않은 사랑을 하는 그녀에게 자주 했던 말은 "30대 남자들은 20대 남자들과 달라. 다들 사랑에 온 마음을 바치치 않아. 일단 체력이 안되거든. 너가 보고 싶어도 한숨에 달려가지 못할 수도 있고 내일 출근 시간을 가늠하며 집에서 한숨더 잘 수도 있어."라는 이야기를 할 때 S는 사랑이 왜 최우선이 되지 못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보러 왜 달려올 수 없는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20대의 열정을 갖고 있는 S의 시선, 마음 그리고 에너지가 부럽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엄청난 사랑의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30대에도 있을까? 태양처럼 이글 이글거리는, 끊임없는 열 에너지를 내뿜는 그런 사람이 있을까. 라는 회의감에서 아마도 비롯되었을 것이다. 

만난지 몇개월 안된 남자친구를 소개해주는 술자리에 갔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취조같은 질문들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S의 남친에게 S가 왜 좋은지, 우리 모두 아는 예쁘고 매력적인 것 말고 S를 왜 진짜 좋아하는지. S가 행복할 때가 아닌 우울하거나 힘들때도 보았는지. 몇날 몇일을 함께했는지. 왜 지금까지 결혼을 안했는지 등을 계속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혼자 한껏 취해서 돌아오는 길에 S를 함께 아끼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왜 S의 남친은 아직까지 결혼을 안했을까 라는 주정을 부렸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카톡 선물하기로 임경선 작가의 '평범한 결혼생활'을 선물로 보냈다. S와 남자친구의 관계뿐만 아니라 S가 결혼생활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도 있었나보다. 결혼생활은 설레지도 않고 격정적이지도 않다. 연애가 1시간 30분짜리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면 결혼은 우리 삶의 배경처럼 틀어져있는 라디오 같다. 별다른 서사는 없고 밥해먹고 청소하는 이야기이다. 그 안에서 소소하게 상대와의 대화코드를 맞춰가는 이야기. 그러다가 진짜 가족처럼 변화하는 이야기. 가장 매력적이지 않은 자다 일어난 순간의 못생긴 모습도 귀여워보이게 되는 이야기. 한팀이 되어 가사와 육아를 분담해가는 팀모임같은 것. 고시 같이 준비하는 친구들끼리 밥터디하며 이야기나누는 것 같은, 머 그런게 결혼생활이랑 더 나는 유사하다고 느꼈다. 결혼생활의 대부분의 차지하는 일상적인 컨텐츠가 대중적으로 퍼블리시된 것이 너무나 없었기에 나는 후다닥 임경선 작가의 책을 보냈다. S가 이걸 보고도 결혼하고 싶을까. 

두번째 만남에서는 나의 남편과 S, 그리고 S의 남자친구가 함께 만났다. 그 자리에서는 날짜가 박힌 청첩장을 받았고 S는 "더 사랑하기 위하여" 결혼을 한다고 문구를 적어두었다. 아, 이제 정말 현실이구나. S의 모든 행동을 사랑스러워하는 호남형의 이빨이 매력적인 S의 남자친구와, 남자친구를 이미 충분히 많이 분석하고 알아차린 S를 보며 두번째 만남에서는 슬슬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결혼생활에 적합한, 태생적으로 성실하고 바른 사람들이 대부분 결혼했을 때 평균적으로 행복하게 잘 산다는 생각을 한 때가 있었다. 지금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 결혼생활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각기의 조합이 더 중요하다고도 본다. 처음에는 둘다 불완전한 조합이더라도 서로를 위하여 얼마만큼 변화할 의지가 있느냐도 중요한 변수이다. 물론 30대 때 근본적으로 변화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확실한 것은 각 관계는 두 사람이 모두 변화시킬 수 있고, 둘의 결혼생활은 플레이도(playdo)처럼 말랑 말랑한 것이라는 점이다. 점성을 잃어 딱딱하게 고착화되기전까지.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 30대 중반, 그녀의 결혼식을 기다리며 한달 반 전부터 나는 축사를 준비하고 있다. 평소 나의 비계획성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빠른 시작이다. 진심을 담으면서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 걱정들을 갖고 있던 나의 진심은 담아내지 않는. 행복하면서도 사려깊은 그런 축사. 를 준비하기 위하여 나는 글로 그간 스쳐간 나의 걱정과 고민들을 쏟아낸다.

누구보다 아름다울 신부일 그녀를 떠올리며 - 멋진 축사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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