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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영 Mar 27. 2021

좋은 기획자가 되려면

너무도 많은 방법론이 있겠지만

'기획'은 '브랜딩'만큼이나 같은 단어를 두고 대화하더라도 다른 것을 상상하기 쉬운, 정의부터 범위까지 상당히 넓은, 모호한 단어이다. 그래도 최근 기획력을 갖추어가는데 필요한 과정, 좋은 기획자가 되어가기 위한 근육을 어떻게 길러야할지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어 한번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기획의 시작은 필력에서 


오늘날과 같은 영상 시대에서 필력을 운운하는 것은 다소 촌스러울 수 있지만, 혼자서 모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1인 크리에이터가 아니라면 필력은 역시 중요하다. 필력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보다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게 해주고, 머릿속에 떠다니는 상상들이 현실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 

필력은 비단 후킹한 하나의 광고 카피를 만들어내는 범위 이상의 것이다. 카피를 쓰는 과정은 서비스나 제품의 전체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매력적인 태그가 될 수 있는 옵션들을 뽑아내고, 그 중에서 가장 뾰족한 스파이크(spike) 하나를 남기는 행위이다. 물론 그 스파이크를 나만 이해하는 방식이 아닌 고객도 한번에 잘 캐치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까지 포함된 작업이다. 

가장 좋은 기획자들은 구조적인 글쓰기와 매력적인 글쓰기 모두 가능한 사람들이다.
구조적으로 짜임새가 좋은 글은 각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개연성이 높고, 그를 이어놓은 문단과 문단의 개연성이 높다. 문단과 문단 사이의 비약이나 점프가 없고, 1-2개의 핵심 생각을 향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개념을 가장 잘 활용하는 곳은 전략 컨설팅업이고,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가장 잘 정리한 것은 컨설턴트식 글쓰기의 바이블, 바바라 민토의 <논리의 기술>일 것이다. 


대학교 4학년 경영학과 친구들이 많이 끼고 있던 그 책. 다 읽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매력적인 글쓰기는 발산과 검열의 과정을 적절히 거쳐야 한다. 내 안에 다양한 단어와 표현법, 비유나 메타포를 할 수 있는 장치들이 떠다니고 있어야 한다. (하루키는 좋은 소재가 떠올랐을 때 저장소 안에 아카이브 한다고 했듯이) 그를 활용하여 글을 써본다음에 자신의 글을 읽는 첫 독자로써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해야 한다. 똑같은 이야기를 그냥 다르게 표현한 문장은 없는지,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문자 길이가 너무 비슷해서 리듬감이 없는 건 아닌지. 몇번의 지루한 탈고끝에 조금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게 된다. 

글은 결국 읽는 이야기여서 서사 구조 상의 매력도도 있어야 한다.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구전이 많이 되고 살아남는 이야기, 순식간에 퍼지는 이야기들의 특징을 간추리고 좋은 예시들을 서술한 책으로는 <컨테이져스>를 추천하다. 


2013년도에 나왔지만, 지금까지도 유효한 책 


사실 필력은 좋은 콘셉트나 생각들을 타인에게 표현하는데 필요한, 어찌보면 '생각'에 '포장'을 입히는 작업으로 느껴져서 기획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완성으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닭이 먼저나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 비슷하지만 - 우리의 사고력은 그 사고를 펼치는 언어가 한계짓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좋아질 수록 사고력 또한 좋아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필력은 좋은 기획의 필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2. 좋은 생각을 전개해가려면 

좋은 기획은 좋은 생각에서 나온다. 좋은 생각들을 전개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체와 발산, 그리고 재조립의 과정이 필요하다. 

<해체해보기> 
생각을 펼쳐나갈 방향성들을 만들어가는 단계이다. 좋은 질문들로 대상을 해체해보아도 좋고, 대상을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로 해체해보아도 좋다. 기존에 존재하는 서비스나 제품의 경우에는 고객들의 유형을 해체하는데서 생각을 시작해보기도 한다. 해체방식은 다양한데 일단은 다양한 면들로 쪼개어보고 그 안에서 가장 유의미한 면을 찾아내야 한다. 최근 온라인 정기구독 서비스 개편 기획할 때에는 연령과 같은 데모그래픽이나 사용년수, 구독하는 제품류, 사용하는 기구(에스프레소 머신 vs 드립기구) 가 아닌 주문하는 방식(자동결제 vs 그때 그때 주문)이 핵심적인 해체 기준이 되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었다. 불특정 다수가 방문하는 매장의 경우에는 매장별로 다르게 접근하긴 하지만 방문하는 시간대나 방문의 Occasion별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가장 원론적인 질문들을 할 때에는 특정 제품의 고객들의 가장 근본적인 효용이 무엇인가, 가치제언이 무엇인가를 쪼개어보기도 한다. 편리성인지, 심미적 만족감인지, 타인에게 자랑할 수 있음인지 등.

해체해보기를 하는 단계에서는 무엇보다 그리면서 해야 제맛이다. 정제된 타이핑보다는 펜으로 쓱삭 쓱삭 해체의 단면들을 설정해본다. 

<발산해보기> 
쪼개어진 면들을 갖고 이제 스펙트럼을 넓혀보는 단계이다. 내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론은 

1) 다른 산업에 눈을 돌려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본다. 
2) 쪼개어진 단면을 프레이밍할 다른 단어들 사용해보고, 그에 따라 또 생각을 펼쳐본다. 
3) 해체된 개념 혹은 가치제언 키워드를 2-3가지 도출하고, 그 가치제언이 강하게 적용되는 다른 경우들을 찾아본다. 

3개의 다른 문장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사실은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에서도 언급한 온라인 정기구독 서비스를 개편할 때 있어서 주요하게 다루어졌던 키워드인 '멤버십' 개념을 갖고 생각할 때 우리는 '커뮤니티' 방향의 보다 끈끈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느낌의 방향성을 떠올리기도 했고, 아마존/쿠팡처럼 언제든지 무료 배송이 되는 편리성을 떠올리기도 했다. 나아가 코스트코의 멤버십처럼 보다 저렴한 가격을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을 떠올려볼 수 도 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카페 중 컨셉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던 곳은 성수동의 '양면성' 매장이다. 고객들이 카페를 찾는 이유, 가치로는 '카페인 섭취' '훌륭한 커피를 마셨을 때의 만족감(미식적 경험)' '보다 편안한 라운지 같은 경험' '작은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이국적이고 리프레시 되는 경험' '바리스타와의 친밀감, 정서적 유대'가 있을 수 있는데 양면성은 (가장 난이도가 높은) 가장 마지막의 정서적 유대에 초점을 맞춰 재밌게 풀어낸 곳이었다. 공간 자체는 온통 하얗고 스텐레스 가구 밖에 없어서 차가운 느낌이었지만, 착석하면 자리로 또르르 와 같이 착석(?)해서 설명해주는 눈높이의 친근한 응대와 메뉴에 떡하게 자리잡힌 '고민상담, 연애상담, 진로상담' 메뉴는 언제든지 고민이 있을 때 이곳을 찾아도 되. 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고 있었다. 

병원 가구를 많이 쓴 양면성
가격도 귀여운 상담 메뉴. 착한 가격에 일단 받아보고 싶어진다. 지금은 없어진 양면성 매장의 메뉴판 


곧 네번째 출시를 앞두고 있는, 희소하고 값비싼(?) 커피를 선보이는 BB의 옥션 시리즈 의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고 있을 때엔 이 커피를 '프리미엄 미식 경험'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커피 Geek들을 위한 미래주의적 도전/탐험'으로 바라볼 것인지 다른 각도에서 쪼개어 보는 과정을 거쳤었다. 전자의 프리미엄 미식 경험으로 바라본다면 파인다이닝의 경험적인 요소들을 갖고 발산을 펼쳐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실험적인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커피이고, 흔히 상상하는 커피 맛의 스펙트럼 밖에 있는 커피이기에 '도전가, 모험가, 같이 이 탐험을 떠날 원정대를 모집한다'라는 컨셉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컨셉을 바탕으로 디자인 무드나 Key Message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커피마시는 경험도 마치 달로 떠나는 모험과 유사할 수 있어요. 


<재조립하기>

마음껏 펼쳐보았으면 이제는 담아낼 것들을 골라내고 결정하는 과정이다. 끊임없이 발산했던 아이디어 중 버릴 것들은 버리고 핵심적인 것들을 남기는 과정. 나는 생각의 뾰족함, 구현의 난이도, 실행되었을 때의 임팩트 등을 떠올리면서 남길 컨셉을 정하는 편이다. 

기존에 존재하던 서비스나 제품의 경우 재조립된 모습이 최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 강조할 면을 찾았다면, 그 차이가 조금씩 반영되었다면, 초반의 모습과 단 2도 정도만 차이가 난 컨셉이라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큰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3. 나만의 저장소를 갖추는 것 

좋은 기획을 하려면 기획을 양적으로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안에 좋은 소재들, 인풋들을 많이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많은 것들을 소비하고, 경험하고, 읽고 나아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장하는 과정이다. 마지막 저장소 부분은 내가 취약한 부분이기에, 최근 읽은 <기획은 패턴이다>에서 좋은 부분들을 주로 발췌해서 마무리를 한다. 

건축 기획 이야기이지만, 전반적인 기획



일본의 건축사무소 UDS에서 편찬한 <기획은 패턴이다>의 저자들은 좋은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소비자가 되어 전체 과정을 경험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천한다. 그 과정은 꼭 진짜 소비자처럼 자비의 경비를 들여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내돈내산 하면 아무래도 모든 경험이 균형감있게 다가온다. 만일 회사 경비로 답사를 가게 되면 타사가 잘하는 점 위주로 살필 수 밖에 없다. 내돈내산을 하게 되면 내 지출에 대한 값어치를 마땅히 받고 싶기에, 불만족 스러운 요소들 또한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좋은 인풋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장을 해갈 필요가 있다. 인사이트를 정리해서 글의 형태로 표현해도 좋고 , 인스타그램 같은 계정에 간단한 태그들로 아카이빙을 해갈 수 있다면 그도 좋다. 그 소재를 떠올릴 수 있는 자신만의 색인(인덱스)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테면 '좋은 캠페인' '세일' '기분좋은 공간' '매력적인 디스플레이' 등. 

직접한 기획이 아닌 남이 한 기획들을 마치 나의 기획처럼 곱씹어보는 것도 좋은 간접 기획의 경험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다른 사례를 보러갈 때 미리 '이러이러할 것이다'라는 예상을 최대한으로 해본다고 한다. 온라인으로 리서치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이러할 것이다'라고 혼자 구체화된 그림을 그려보고, 실제로 갔을 때 예상한 것과 차이가 있다면 '왜 이렇게 했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보다고 한다. 이 '왜?'를 몇단계씩 내려가보고 답을 얻게 되면 스스로의 기획에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답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많은 인풋들을 접하고 그것들 역시 해체해서 나만의 색인을 달아 저장하는 것, 그리고 그 사례들에 대해서 왜 그렇게 했을까의 질문들을 던져보는 것. 이 과정을 거칠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아카이브소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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