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영 Sep 16. 2021

농구가 나에게 알려준 것

팀 스포츠가 나에게 준 것

2017년 여름. 

바닥에서 유난히 농구화의 삑삑 거리는 소리가 많이 나는 장충 체육관에서, 나는 L에게 바짝 붙어 수비를 하고 있었다. 에어콘이 나와도 무더운 그곳. L은 분명 자세를 무척 낮춰서 나의 아래에 있었는데 (반대로 내 자세는 너무 높았다는 뜻..) 그가 머리를 일으켜 세운 순간 퍽하는 소리가 났고, 코가 무언가 잘못된 걸 직감했다. 

뚝- 뚝. 
농구장 나무 바닥에, 내 코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 동안에 나는 얼굴에 워낙 공을 자주 맞았기 때문에, 공을 맞아서 별이 반짝하는 것 같은 순간들은 많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직행했다. 2주일쯤 뒤에 붓기가 빠진 뒤 수술을 하게 되었다. 알루미늄 스틸 같은 차가운 느낌의 수술대 위에 올라가 누워있을 때, 수술 전 의사들이 한마디 물었다. 

"농구 선수세요?" 
"... 아니요" 

수술 자체는 간단했지만 마취에서 깨어난 뒤 고통은 컸다. 그 뒤로 농구는 한 두번 정도 더 나갔지만 다시 공을 한번 코에 맞고는 이제 더이상 농구를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얼굴에 무언가 맞는 트라우마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렇게 내 농구 시절은 너무도 아쉽게 끝나버렸다. 

농구를 시작한 건, 코뼈가 부러지기 약 4년 전으로 돌아간다.

일본의 고등학교 때 농구를 해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아라와, 또 미국에서 농구를 했었던 예리언니와, 그리고 체교과에서 농구 종목으로 시험을 쳤던 L이 일일코치로 등장. 이렇게 완벽한 조합으로 한강에서 농구를 한번 하자고 했고, 나는 FB에서 신나게 오픈 이벤트로 한여름의 농구 이벤트를 기획했다. 이름하여 미녀들의 NBA... (L의 말에 따르면 미녀도 NBA 선수도 없는 곳이였지만).   

미엔이 첫 한강 모임. Bebas Neue 폰트로 삽시간에 만들어서 갖고온 티셔츠.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관심을 보였고 8월 중순의 첫 모임때에는 십수명이 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농구를 다 처음하거나 거의 처음한 수준에 가까웠기에, 예리 언니와 선용이를 제외하고는 다 구름 농구를 하고 있었다. (사실 농구를 했다고 하기도 무색...) 하지만 내 친구들의 도파민은 폭발해버렸고 그들의 뇌와 척수는 농구의 맛을 알아버렸다. 공을 뻇고, 골을 넣는 그 기쁨. (아직 드리블은 못하기에) 그건 경험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원래는 1회성 이벤트로 기획되었던 그 모임은 매주 하는 모임으로 바뀌게 되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내 친구들이 한번즈음 호기심으로 다 농구장을 다녀갔다. 3번 이상 나오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고, 그 뒤로 몇년씩 나오는 친구들은 더 적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처음의 못하는 단계를 끈기있게 극복해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하는 사람들은 정말 끈끈해졌으며, 취미 뿐만 아니라 일과 가족들이 함께 얽히기도 하고 같이 육아도 분담하는 평생의 친구들로 거듭나게 되었다. 

난 농구를 4년 동안 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그건 하나의 운동의 영역 이상으로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 뒤로 나는 여자들의 팀 스포츠 활동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항상 주창하고 다니는 농구(혹은 다른 팀 스포츠)에서 얻을 수 있는 러닝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1.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게 된다. 

4년 동안 매주 농구를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나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점이다. 농구에서 갑자기 왠 메타인식이야? 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구기 스포츠를 잘 못하는 역량 수준에서 임하게 되면 그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 잘 드러나게 된다. (왜냐하면 기교를 부리거나 테크닉을 쓸 수 없기에...) 구름 농구를 하던 시절 멤버들은 스스로의 캐릭터를 여지없이 보여주게 되었다. 잘 흥분하고 공격적이고 리바운드를 너무나 의욕적으로 하던 나. 하지만 정확한 슛은 잘 못 쏘는 나. 주구장창 잘 뛰어다니는 나. 수비할 때 상대편한테 절대 기죽지 않는 나. 몸 부딪히는 걸 피하지 않는 나. 나는 정확도가 높은 액션을 할 수는 없고 스피드가 빠르진 않았지만, 공격 본능을 갖고 있었다. 다 같이 잘하지 못하더라도 모두가 나 같은 것은 아니었다. 몸을 부딪히지 않으려고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돌파해가기보다는 3점 라인에서 슛을 쏘는 걸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이 가야 하는 위치를 직감적으로 잘 파악하고 공을 잘 순환시키는 시야가 넓은 사람들도 있었다. 


에이스 일지와 나. 이렇게 역동적인 사진이 거의 없는데... 


농구를 시작했던 28살, 나는 남편의 회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남편으로부터 피드백을 듣기 시작했다. '넌 너무 공격적이야. 네 템포에 모든 사람들의 템포를 맞추지 마. 다른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흐를 수 있어. 그걸 읽어야 해'가 골자인 남편의 피드백은 연이어 이어졌고 나는 받는 족족 튕겨내고 있었다. 그 전 회사들에서는 역량보다 피플 관련해서 더 높은 평가들이 나왔기에 (아마도 막내로서 분위기를 잘 띄었다는 이야기)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농구를 하는 나의 모습을 보니 - 영상으로, 사진으로 빼도 박도 못하게 담긴 나의 모습 - 그의 말은 너무나 사실이었다. 나는 공격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잘 흥분도 하는 다혈질이었다. 

2. 객관화한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일반 사회의 Framework에서만 나의 공격적인 면모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건 삼키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농구를 하면서 깨닫게 된 나의 공격성은 달랐다. 왜냐하면 그 공격성이,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팀 스포츠란 그런 것이다. 각자 다른 역량, 성향,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여럿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게임을 만들어간다. 마지막 득점을 만들어내는 사람만이 게임을 만들어내는게 아니다. 라인 밖에서 공을 던져 공격을 시작하는 사람, 철두철미하게 수비하는 사람, 공을 돌려 공간을 만들어내는 사람, 슛을 쏠 수 있게 환상적인 패스를 날려준 사람. 그리고 상대편 수비를 수비해주는 사람까지. 5명 모두가 게임에 기여하고 있다. 한명도 빠져서는 안된다. 나는 공격적인 나 그대로, 굉장히 기여하고 있는 셈이었다. 나의 끈기로, 열성적이고 공격적인 수비로, 리바운드로. 공격적으로 리바운드 해내면 같은 팀 멤버들이 환호했다. 아, 이런게 농구의 쾌감이구나. 

3. 타인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나 '나'가 잘 보이게 된만큼 다른 사람들도 경기에서 잘 보이게 된다. 그 사람의 움직임, 눈빛, 스스로를 어떻게 제어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일할 때에도 어떤 스타일일지 참 잘 그려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 - 타인의 스타일도 보다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 기여할 수 있는 다른 영역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니까. 

재미있는 건 미엔에는 남자 게스트들이 항상 끊이지 않았었는데 (대부분 오래된 남자친구나 남편,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로 구성) 남자 게스트들 또한 성향이 너무나 잘 파악되었다. 

4. 쌓아나가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된다. 

미엔의 감독이었던 (그리고 아직도 감독이신) L은 2시간 농구 시간 중 30분 정도는 스트레칭과 기초체력 훈련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앞으로 뛰고 뒤로 뛰고 옆으로 뛰었다. 사이드 스텝을 하고, 레이업 슛 훈련을 하고, 패스 훈련을 했다. L은 매번 소소하게 다른 훈련을 만들어노는 것을 재미있어 한 듯 했지만 훈련을 하는 우리는 결코 그 시간을 재미있어하지 않았다. 다 같이 쪼르르 운동장을 달리던 20년 전, 초등학교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만큼이나. 

그래도 이 재미없는 노력들이, 혼자 해나가는 드리블과 패스, 레이업 연습들은 정직하게 쌓여간다. 농구를 나오다가 안 나온 친구들은 아마도 실력이 빠르게 늘지 않고, 자신이 잘 못하는 것 같아서 이탈한 경우들이 많았지만 - 난 운동만큼이나 세상에서 노력한만큼의 보상을 주는 시스템을 본 적이 없다. 사람마다 아웃풋의 기울기는 다르지만 운동의 인풋과 아웃풋은 항상 비례한다. 역의 방향으로, 이상한 하강곡선을 그리는 경우는 없다. 다만 중요한 건 그 기울기 - 나의 성장 계수와 타인의 성장 계수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성장 계수에 집중하면 운동은 항상 보상의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 나는, 팀 스포츠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20대 후반이라도 꼭 경험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것이 축구든, 배구이던, 테니스이던. 초기 몇개월에 포기하지 않고 2년만 투자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2년이나..? 라고 소리지를 수 있지만. 매일 하지 않는다면, 운동에서 2년은 정말 짧은 시간...) 

 나아가 더 어린 시절부터 여자들이 팀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중 고등학교 때 체육 수업을 거르지 않고, 일주일에 3번씩 뛰어다녔으면 좋겠다. 남녀가 함께 피구나 발야구 뿐만 아니라 축구랑 농구, 배구도 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팀 스포츠의 기쁨을, 그 추억을 소중히 갖고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작가의 이전글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하는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