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얼룩, 내 모든 문장의 시작

사랑의 정의가 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을 때

by 서율



잊었다고 믿었던 슬픔이 해일처럼 밀려와도,

나는 여전히 당신이라는 얼룩을 빌려와 사랑을 쓴다.






나에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난제’로 남은 한 사람이 있다. 수차례의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면서도 끝내 그를 끊어내지 못했던 것은, 그가 내게 사랑의 시작이자 이별의 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서 사랑을 배웠고, 동시에 무너지는 법을 배웠다.


간질거리던 설렘의 첫 페이지부터, 벚꽃 잎이 비처럼 흩날리던 우리의 찬란했던 봄을 지나, 작은 방심에도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던 살얼음판 같은 겨울까지.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와 함께한 모든 계절은 내게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그와의 서사가 완전히 막을 내린 후에도, 나는 여전히 감정의 잔해들을 깨끗이 치워내지 못했다. 대신 수없이 많은 밤, 그를 글의 뮤즈로 소환하곤 했다. 그것은 그를 잊지 못해서도, 혹은 사랑하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워서도 아니었다. 어린 날에 배운 언어가 평생의 사고를 지배하듯, 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의 형상은 오직 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는 풋내 나고 예쁘기만 한 꽃잎보다는,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는 짙은 얼룩에 가까웠다. 마음에 잠시 머물다 가는 감정을 넘어, 영혼의 깊숙한 곳에 문신처럼 새겨진 존재였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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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랑에 관해 쓸 때면, 나의 문장은 유독 짙은 농도를 띠곤 했다. 글을 쓰는 그 찰나만큼은 과거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다시 그와 사랑하고, 다시 그와 이별해야 했으니까. 어떤 날은 겨우 흘려보냈다고 믿었던 슬픔이 해일처럼 몰려와 나를 잠식했고, 나는 하루 종일 그 지독한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를 자주 문장 사이로 불러내어 앉혀두곤 한다.


언젠가 그에게 지나가듯 말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비록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언제가 되었든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결국엔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당시의 정확한 마음은 이제 희미해졌지만, 아마도 그에게서 배운 사랑의 모양이 너무도 아프고 아름다워 어떻게든 기록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문득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미움도 그리움도 휘발된 자리에 남은 것은, 결국 그가 나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고백이다. 나의 문장이 길을 잃을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는 가장 시린 원동력을 선물해 준 것에 대하여, 나는 이제서야 고요한 감사를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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