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상, 위로라는 말의 무게

좋은 죽음이라 불리는 단어 앞에서, 내가 다시 생각한 진심 어린 위로

by 서율



‘호상(好喪)’이라는 단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복을 누리며 오래 산 사람이 큰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난 경우를 뜻합니다. 직역하면 ‘좋은 죽음’이라는 다소 역설적인 표현이지요. 그래서인지 일상 대화 속에서 쉽게 오르내리는 말은 아닙니다.


몇 년 전, 저의 할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회사에서 들었고, 선임자에게 울음을 참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난감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위로 잘 못하는데… 근데 이건 호상이야.”


그 순간, 제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막 잃은 사람 앞에서 ‘호상’이라니. 그 말은 마치 제 슬픔을 가볍게 취급하는 것 같았고, 저를 이해하지 못한 무심한 위로처럼 들렸습니다.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던 선임자였기에, 일부러 상처 주려는 건 아닐까 오해까지 했습니다.


당시의 저는 확신했습니다. 오래 살았다고 해서 이별이 덜 아픈 것도 아니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고 해서 마음이 준비되는 것도 아니다. 죽음 앞에서 괜찮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최소한 당사자 앞에서 ‘호상’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어른들이 그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단정 짓기 위함이 아니라,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것을. 당사자의 슬픔을 대신 짊어질 순 없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이가 끝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위로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말이지요. 그제서야, 선임자가 제게 건넸던 말의 맥락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호상’이라는 단어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떠난 이를 위한 의식이면서 동시에 남은 이를 위한 통과의례이기 때문입니다. 남겨진 사람에게는 그 어떤 이별도 괜찮을 수 없으며, ‘좋은 죽음’이라는 말조차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위로란 결국 해주는 이의 입장이 아니라, 받는 이의 마음에 닿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애정을 담아도, 듣는 사람이 위로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말은 공허해집니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상투적인 말보다, 함께 울어주거나 그 아픔에 잠시 머물러주는 태도가 오히려 더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이별과 마주합니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뿐 아니라, 관계의 단절이나 꿈의 좌절 앞에서도 비슷한 슬픔을 겪습니다. 그럴 때 진정한 위로는 빠른 해답이 아니라, 곁에 있어주는 느린 공감일지도 모릅니다.


아끼는 마음에 건넨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호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진심 어린 위로란 무엇일까를 되묻습니다. 어쩌면 그 답은 거창하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그저 누군가의 곁에 조용히 머물러주는 일.

그 순간, 우리는 슬픔의 무게를 조금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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