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취향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나의 결이자 나의 방식이다.

by 서율


나는 어릴 적부터 오이를 먹지 않았다. 수련회에 갔을 때에도 물 대신 오이를 먹으라 했지만, 끝내 쌈장만 찍어 먹던 아이였다. 목이 말라 힘들어도 오이는 싫었다. 그만큼 나는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건 끝까지 좋아하고, 싫은 건 아무리 권해도 손이 가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어른이 되면 오이를 먹을 줄 알았다. 세월이 지나면 입맛도, 마음도 조금은 변할 거라 생각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렇게 유연해지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여전히 같다. 오이의 향은 여전히 낯설고, 낯선 건 여전히 싫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뚜렷한 채로 살아간다. 세월은 흘렀지만, 나의 결은 오히려 더 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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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랜 연애 끝에 힘든 시간을 보냈던 친구가 드디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다며 소개 자리를 마련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함께 늙고 싶은 사람’이라니, 내 일처럼 설레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놀라웠다. 외모도, 말투도, 풍기는 기류까지 그의 전 연인과 무척 닮아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해됐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사랑의 방식도, 마음이 머무는 온도도 결국 비슷한 곳을 향한다는 걸. 친구의 사랑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었다. 마치 오래 묵은 바위처럼, 그의 마음도 단단했다.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조금의 업그레이드는 있을지 몰라도, 세월이 바꾸는 건 결국 그 뿌리 위에 새로 달린 가지일 뿐이다. 사람마다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색이 있고, 그것은 한 번 정해지면 쉽게 바래지 않는다. 그 색이 때로는 고집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그것이 나 자신을 가장 진하게 증명하는 방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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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도 그런 일일지 모른다. 새로운 문장을 찾아 헤매면서도, 결국은 나의 언어로 돌아오는 일. 아무리 변화를 시도해도, 문장에는 언제나 내 결이 묻어난다. 그것이 나의 취향이고, 나의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겠지.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으로, 여전히 나다운 문장을 찾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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