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 없는 안정과 사랑을 끌어안고 무너진 날들
그래 이혼하자.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다 틈이 생길 때면 돌변해 이혼을 요구하는 그를 나는 더는 견딜 힘이 없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이 일 년 동안 이어졌다.
이혼을 요구할 때 그는 내면의 잔인함을 당연한 듯 꺼내 들었다.
한 곳을 향해 돌진하는 자동차인 듯 그의 머리속에는 이혼과 그 이후 계획해 놓은 자신의 삶만이 남아있는 듯했다.
그가 그렇게 원하는 이혼서류에 사인을 해주는 대신 나는 멍청한 조건을 걸었다.
이혼 서류를 이미 제출한 부부이지만 같이 부부상담을 받기로.
체면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거의 없던 그는, 이런 일이 이 정도까지 커질 것은 아니라는 상담사의 첫마디에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이혼을 확정하는 날, 이혼 의사가 확실하냐는 판사의 말에 나는 담담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상하게도 울먹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네”라고 했다. 그러고는 후련한 얼굴을 하고 차에 오른 뒤 회사로 돌아갔다.
아직 서울로 이사하기 전, 그는 늘 퇴근 전에 내가 뭐가 먹고 싶은 지 물어보았다.
내가 좋아하던 프로그램 시청을 놓치는 날이면, 그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놓고 나를 기다렸다.
이혼한 우리는 손을 잡고 부부상담을 다녔다.
그는 상담사의 질문에 언제나 상냥하게 대답했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안도감인지 그는 편안해 보였다.
그는 내가 서울에서 살 집을 굳이 같이 봐주겠다고 했다.
위자료라며 그가 내민 돈으로는 서울에서 멀쩡한 집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같이 보러 돌아다닌 서울 외곽 집들의 상태는 처참했다. 그는 그 처참함에 조용히 웃는 듯 보였다.
본인과 살면 내 노후는 보장되는 거라고 줄곧 말하던 그는 내가 가게 될 허름한 집이 이제 펼쳐지게 될 내 현실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