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면 떠나야 하는 도깨비터에서 마침내 드러난 폭력
그 집에 이사를 가고 3년쯤 되었던 때 나는 아버지가 오랜 기간 엄마를 때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아버지는 집안의 물건을 던질 때가 많았다. 내가 귀여워했던 작은 흰 강아지도 우유를 많이 먹였다며 벽에 세게 던진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엄마를 때렸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나는 일부러 그 사실을 알고도 감당하기 어려워 눈을 감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릴 적 기억이 대부분 남아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엄마가 맞고 산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누린 모든 평화로움에 구역질이 났다.
집에는 가끔씩 꽃이 생겼다.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고 난 뒤에는 집에 꽃이 생겼다. 아버지는 엄마를 때리며, 모두 너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의 인생이 별로인 이유가. 자신의 인생이 별 볼일 없게 된 이유가 모두 엄마 때문이라고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엄마를 때렸다는 사실을 이제 나와 동생까지 잘 알게 되자, 폭력은 더 붉고 선명해졌다. 그동안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노려 때렸다면, 이제는 엄마의 몸의 보이는 부분까지, 얼굴까지, 눈을 터트릴 듯, 입을 찢을 듯 아버지는 폭력을 행사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게 아버지를 아버지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천륜이라는 말만 기계처럼 반복했다. 천륜. 천륜.
엄마는 나에게 아버지에 대해 붙일 수 있는 온갖 욕을 하고는, 너는 천륜이니 아버지를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말로 늘 끝을 맺었다. 마치 손에 뭍은 먼지 가루를 손을 마주치며 톡톡 털어내는 듯 보였다.
그 집에서 만약 내가 경찰에 그 폭력을 알린다면, 나는 부모도 모르는 천하의 죽일 년이 되는 것이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나의 소원은 엄마와 나와 동생만 있는 작고 가난하고 따듯한 집에 사는 것이었다.
그의 폭력은 노골적으로 계속되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그간 엄마의 하소연도 계속되었다. 맞고 산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엄마는 그 쓰라림을 털어낼 사람이 몇 없었을 것이었다.
나는 부러 집에서 먼 학교에 지원을 하고, 먼 곳의 회사에 들어가 집에서 멀리멀리 떨어져 살았다. 내가 어릴 적 엄마는 바늘귀에 실을 끼워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는데, 내가 바늘에 실을 꿰어 날아갈 듯 그 실을 길게 당겨내자 엄마는 “우리 딸, 엄마랑 멀리 떨어져서 살겠네”했다. 그때는 나도 엄마의 ‘우리 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