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드파워의 눈물>과 <앵그리 이누크>
영화 <레드파워의 눈물>은 스탠딩록 부족의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건설 반대 운동을 그린다. 오늘날 미국의 영토는 미국이 건국되기 전부터 인디언들의 영토였다. 인디언 추장을 인질로까지 이용하면서 미국은 거침없이 영역을 넓혀나갔다. 국익을 명분으로 인디언의 삶의 터전을 철저히 빼앗고 파괴했다. 심지어 송유관을 건설하면서 물에 대한 권리까지도 빼앗는다.
영화 <앵그리 이누크>는 이누이트가 물범 보호 운동에 반대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누이트에게 물범은 생존수단이다. 사냥을 통해 고기를 먹고, 가죽을 이용해 옷이나 장신구를 만들어 입거나 팔아서 생활한다. 동물 보호 단체에서는 상업적 물범 사냥을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EU에서는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하였다. 그로 인해 이누이트는 물범 가죽 판매를 통한 수입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그 손해는 이누이트 지역 사회의 생활을 힘들게 만들었다.
두 영화는 소수자인 인디언과 이누이트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우리가 뭘 잘못했죠? 우린 누군가를 해친 적이 없어요.” 영화 <레드파워의 눈물>에서 인디언은 오랜 기간 생활터전이었던 지역을 보호하려 한다. “유럽인들은 여전히 우리를 원시인으로 봐요. 문화적 편견을 깨고 경제적 평등을 원합니다.” 영화 <앵그리 이누크>에서 이누이트는 생계유지를 위해 물범 사냥을 반대하지 못하도록 하고자 한다. ‘글로벌’이라는 용어는 많이 사용되지만 우리는 이들을 사회의 일원으로부터 배제했던 것이다. 우리의 시선에서 그들을 판단하고, 우리의 입장에서 그들의 입장을 판단했던 것이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야함은 분명하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모두 평등한 가치 있는 존재라는 명분은 좋은 이유지만 우리에게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우리도 언제든지 소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가 되어야한다는 이유가 좀 더 와 닿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유를 제시해야할 만큼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쉽지 않고,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안타깝다.’, ‘불쌍하다.’라는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 고민까지 이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한 번에 그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 번에 해결해줄 수 없다. 두 영화를 보면 소수자들도 마냥 손을 놓고 사회가 그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이 목소리를 낼 때 그걸 들어주고, 그들이 저항을 할 때 작은 힘이라도 실어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우리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다면 분명히 변화는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