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의 당신이 당신인가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단 몇 문장으로 나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어렸을 때의 나와 성인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조차도 미세하게 달라진다. 그렇지만 어제의 ‘나’도 ‘나’이고 오늘의 ‘나’도 ‘나’이다.
"생의 끝에 이르게 되었을 때 어느 순간의 ‘나’를 ‘나’로 볼 것인가?"
영화 <네루다>의 감독은 그에 대해 자신만의 답을 던지고 있다. 그는 1948년부터 1950년까지의 네루다를 ‘네루다’로 보았다. 대략 2년이란 시간 동안 공산주의자인 네루다는 이곳저곳으로 도피생활을 한다.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그는 변하게 된다.
1948년 이전의 ‘네루다’는 입으로만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위대한 시인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공산주의자 활동을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가난한 민중을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하였다. 주변에서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는 시선을 즐기며 민중을 도와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영화 속 한 남성 가수가 네루다의 팬이라며 키스를 하고 시를 읊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때 네루다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만 진심으로 하고 싶어 하기보다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여하는 듯 보인다.
도피생활을 하게 되면서 점점 ‘네루다’는 변하게 된다. 네루다의 팬이라며 다가온 한 가난한 여성이 술에 취해 그에게 ‘진짜 공산주의가 실현되면 모두가 평등한 건가요?’라고 묻는다. 이때 네루다는 “모두가 평등해질 겁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아직까지 그는 완전히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민중과 자신의 관계를 수직적인 관계로 본다. 그렇지만 술에 취해 희망을 믿지 않는 것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는 여성을 바라보면서 이전과는 달리 어떤 생각에 잠긴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항구로 도망 오게 된 ‘네루다’는 한 아이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아이 앞에서 그는 “줄 게 없어서 미안하구나.”라고 하며 아이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아이에게 좋은 옷감으로 만든 흰 옷을 벗어주고 간다. 민중을 위해 진심으로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하고 그 나눌 것이 없을 때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로소 입으로만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진정한 평등을 함께할 준비가 된 인물이 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모두의 노래’라는 시집을 쓰게 된다. 이전에는 사랑에 관한 시를 주로 썼다면 ‘모두의 노래’에는 시대의 아픔과 이상이 담긴 시가 많이 쓰였다. 자신의 문학적 재능이 가장 빛난 시기에 2년 동안 그는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시를 쓰는 것에 소홀하지 않았다. 자신이 민중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를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 이후부터 그는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뿐만 아니라 시대의 아픔과 이상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었다.
한 사람을 정의할 때 그 사람의 삶 전체를 가지고 정의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일부를 가지고 정의할 수도 있다.
영화 <네루다>의 감독은 네루다가 진정한 시대의 아픔과 이상을 노래하게 되는 시인이 되는 순간을 네루다의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여기고 그 순간으로 그를 정의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영웅 행세를 하던 네루다에서 진정으로 민중과 함께하는 네루다로 변한 이 시기가 그의 삶에서 빛나던 순간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