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소수자가 사회적 차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연대다. 연대는 같은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고 책임을 지는 과정을 만든다. 이를 통해 그들은 덜 외로우면서도 서로를 위하는 과정을 통해 결속력을 높인다. 그러나 이 연대의 맹점은 다른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발견된다. 자신이 직접적으로 속하지 않은 또 다른 소수자를 배척하고 차별하기도 한다. <런던 프라이드>에서 광부가 동성애자의 도움을 거절하고 배척했던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또 다른 소수자 집단을 차별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관용이 필요하다. 자신과 다른 소수자도 포용하고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관용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가장 부당한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마음을 열기 쉽지 않다. 자신들이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열게 되는 경우는 결국엔 너와 내가 다르지 않았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그 과정을 잘 보여준 영화가 <헬프>와 <런던 프라이드>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헬프>에서는 흑인 여성 안에서의 연대와 이를 넘어 백인 여성과의 연대가 생겨나는 과정을 그린다. 물론 백인 여성 전체와의 연대는 아니다. 여기서 그 대상은 남성 중심 사회 속 직업을 가진 백인 여성이다. 이들은 남성들에게 눈엣가시로 사회적 소수자가 됐다. 흑인 여성은 흑인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을 당하는 사회적 소수자다. ‘스키터’가 흑인 가정부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사회적 차별에 대해 그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결국 서로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을 때 연대를 통해 용기를 냈다.
마찬가지로 <런던 프라이드>는 광산 노동자와 성소수자 간의 연대가 생겨나는 과정을 그린다.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받았던 차별의 화살이 광산 노동자에게 돌아갔음을 목격한다.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아픔을 떠올리며 광산 노동자들에게 연대를 제의한다. 그렇지만 광산 노동자들은 이를 거절한다. 광부들은 성소수자를 자신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차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들이 사회적으로 받았던 차별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느낄 때 이들은 비로소 진정한 연대를 하게 된다.
두 영화 모두 실화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현실의 사회적 소수자들은 자신이 당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누구와는 연대하고 누군가와는 연대하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두 영화 모두 자신과 다른 이들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들의 존재만 인정해달라는 태도는 그들이 겪는 차별을 결코 해소할 수 없음을 말한다.
현재 현실의 사회적 소수자들의 고민은 분명 또 다른 차별을 낳을 것이다.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배척당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자신들도 다르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길 원한다면, 다른 이들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인정하고 포용하다 보면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될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더 많은 구성원을 포용하고 이해하고 감쌀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 영화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들이 차별로부터 견뎌내는 과정은 힘들고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연대가 차별을 없애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현실 속에서도 더 넓은 범위의 연대를 통해 영화와 같은 혹시 모를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