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캡틴 판타스틱>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가정과 사회에 영향을 받고 산다. 성인이 되고서는 스스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한다. 누군가는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가볍게 넘기기도 한다. 정도는 다르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지금과는 혹은 남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지만 막상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회가 제시하는 삶의 방식 혹은 주변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다르게 사는 데는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벤과 레슬리는 분명 용기 있게 다른 삶의 방식을 택했다. 자신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바로 섰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에서 답이라고 제시하는 선택지 외의 다른 선택지를 택할 수 있었다. 탐욕이 만연한 자본주의와 조직화된 종교는 그들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삶이 아니었다. 편리한 기존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숲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이 고되어도 그들이 진정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삶과 더 맞았기 때문에 그들은 숲에서의 삶을 택했을 것이다.
그들은 부모가 혹은 사회가 강요하는 방식으로 살기 싫었기 때문에 다른 방식을 택했다. 거기까지는 빌의 삶의 방식을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그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선 의문이 들었다. 다른 방식을 택한 것이 타인의 삶의 방식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벤은 자본이 사회를 옥죄는 수단이 된다면서 아이들에게 음식 해방 임무를 수행하자고 한다. 음식 해방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마트를 도둑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본주의 체제를 비난하면서 택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안에는 사람이 있다. 벤에게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을 훔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의 방식에 맞는 행동을 하기 위해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벤은 자신의 삶의 가치관이 옳았음을 타인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증명하려 한다. 사회에서 중, 고등학교까지 교육받은 이들보다 자신의 방식으로 교육받은 아이가 훨씬 뛰어나다는 걸 보여준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는데서 그쳐도 그만인데 굳이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증명해 보이려고 한다. 다른 이들의 삶은 잘못된 방식처럼 만들어버린다. 그렇지만 벤이 하나의 삶의 방식을 택한 것처럼 다른 이들도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택하고 사는 것이다.
벤이 아들과 딸들에게도 대하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보가 대학에 붙었고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벤은 화를 냈다. 자신이 한 교육방식이 최고였고 이미 너는 최고기 때문에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벤도 다른 방식을 택했던 것처럼 자신의 자녀들에게 다른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했다. 그는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할 수 있는 용기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가 레슬리의 아버지와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벤을 보면서 법정스님이 가졌던 ‘무소유’라는 삶의 방식이 떠올랐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라는 방식으로 살았고 그걸 책으로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도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삶의 방식만 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존중하고 다른 이들의 생활방식을 인정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벤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심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바탕이 되어야만 벤이 택한 삶의 방식도 하나의 온전한 형태로 존중받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