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혹성탈출:종의 전쟁> 자멸을 피하기 위한 길

by 찬란한 하루

영화 <혹성탈출 : 종의 전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혹성탈출1.jpg <혹성탈출:종의 전쟁> 공식 포스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한 가지로 귀결되지 않는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만능’을 인간다움으로 보았고, 칸트는 ‘이성, 도덕’을 인간다움으로 여겼으며, 영국의 경험주의자는 ‘감정’에서 인간다움을 구했다. 이처럼 인간성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었다.


오랜 기간 ‘감정’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소로 보았다. 물론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발달한 두뇌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요소도 중요한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연민, 배려, 관용, 동정, 믿음 같은 감정들을 흔히 인간들이 가진 특징으로 보았다. 타인을 신뢰하고, 타인을 불쌍하게 여기고, 도움이 필요한 타인들을 배려하려는 감정들이 행동으로 옮겨지면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차이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감정들이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고 그 사회가 번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요소라고 보았던 것이다.


혹성탈출3.jpg 인간만이 감정을 가지고 소통하는가? <혹성탈출 : 종의 전쟁> 공식 스틸컷.

<혹성탈출>을 보면서 ‘감정’이라는 요소가 과연 인간만이 가진 특징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리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소녀에게 연민을 느끼고 데려가려 한다. 말을 할 줄 모르는 소녀를 배려해주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소통하려 한다. 모리스의 모습을 통해 감정이 인간만의 특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간이 도구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이 잘 드러났던 것뿐 동물들도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쉽게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잘 드러났을 뿐인 건지 모른다.


‘배려, 관용, 연민’과 같은 감정들은 인간들이 가진 특수한 감정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혹성탈출>에서 유인원들도 배려를 하고 관용을 베풀고, 타자의 상황이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결국 인간만의 특수한 감정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뉴스에서 들려오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잔인한 사건·사고를 보면 그 감정이 인간만이 가진 것도 아니고 모든 인간이 가진 것은 더더욱 아님을 알 수 있다.


혹성탈출2.jpg 이성이 인간성인가? <혹성탈출 : 종의 전쟁> 공식 스틸컷.

시간이 지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을 ‘이성’에서 찾았다. 인간은 도구와 언어의 사용을 통해 두뇌가 발달했다. 발달한 두뇌는 인간이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으로 칭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비록 신체적 능력은 보잘것없어도 정신적 능력으로 그 모든 걸 초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의 영향이 큰 감정보다는 두뇌의 영향이 큰 이성을 중요시하고 인간만의 특징으로 보았다. 그렇지만 이성을 지나치게 믿고 자만하는 순간 오히려 인간은 불행의 길을 걷는다.


<혹성탈출>에서 대령은 언어의 사용이 사고력으로 이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성적 판단을 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특성으로 본다. 즉 그에게 언어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인간은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인간인 것이다. 대령은 인간다운 특징을 잃은 인간은 죽인다. 결국 그 상황에서 바이러스에 걸린 대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공평하게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맞는 선택을 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꼭 ‘이성’을 가지고 판단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이유는 없다. 즉, 그 판단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죽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결국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은 자멸하게 된다.


<혹성탈출>은 인간이 퇴화되고 유인원이 진화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공상처럼 느껴지지만 어쩌면 우리 현실과 가장 맞닿아있다. 이성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이성을 이용해 인공지능을 만들어냈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다분하며, 심지어 인공지능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인간의 사고력은 오히려 퇴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즉 유인원에서 인공지능으로 그 대상을 바꾸면 우리의 미래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은 결국 만물의 영장이 아닐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그건 모두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실험을 한 것도 인간이고 인공지능을 만들어낸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인간은 결국 인간이 가진 인간만의 특성, 강점을 찾는다. ‘이성’이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는 요소로 본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답지 않다. 인공지능이 이성이 극도로 발달한 존재가 된다면 오히려 더 인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즉 인간이 차지한 우월한 위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혹성탈출5.jpg 무엇을 인간성으로 볼 것인가? <혹성탈출 : 종의 전쟁> 공식 스틸컷.

그렇지만 인간성에 대한 방점을 달리하면 달라진다. 인간성은 어쩌면 이성, 감정, 도덕 중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퍼즐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개인마다 요소가 차지하는 크기들이 다를 뿐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어떠한 요소가 큰 부분을 차지하든 그 자체로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들이 가진 다양성을 존중하고 공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범위는 인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대상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만이 가장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을 버리고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인간이 어느 하나에 극단적으로 집중해 자멸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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