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재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재심>은 2000년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같은 재현보다는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에 집중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재심이 이루어지기까지 그 과정을 이야기로 다룬다.
현우(강하늘)는 살인사건과 얽혀 억울하게 진범으로 지목되어 10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그 후 근로복지공단에서는 피해자에게 보상한 금액에 이자를 더해 1억이 넘는 돈을 갚으라고 한다. 억울한 현우의 모친 순임(김해숙)은 법무법인 테미스에 법률상담을 요청하고, 준영(정우)은 상담을 해주게 된다. 얼떨결에 변호를 맡게 된 준영은 현우와 함께 재심을 위해 무죄를 밝힐 증거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나선다.
영화의 제목은 <재심>이지만 영화는 재판의 과정을 자세히 그리지 않으며 무죄를 선고받는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통쾌함을 선사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실화의 주인공인 소년이 2016년 11월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자막만을 내보낸다. 이 영화가 2016년 10월에 크랭크 업되었기 때문에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아 재판 과정을 자세히 그리지 않았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관객에게 무죄 선고를 통한 통쾌함을 주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인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준영이 명백한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열변을 토해 현우가 무죄 선고를 받았더라도 마냥 기쁘고 통쾌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현우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허무하기도 하고 씁쓸했을 것이다. 경찰의 강압수사로 받은 정신적 피해, 잃어버린 10년, 살인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고통 그 어느 것도 보상되지 않는다. 아니, 그 무엇으로도 보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는 오히려 <재심>에 이르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 과정 속에서 현우와 준영은 변화했다. 현우는 수감생활 후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리고 세상에 대한 불신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에게 준영 역시 믿지 못할 대상이다.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 백방 노력하는 준영을 보며 불신의 벽이 무너져간다. 물론 중간에 다시 그 불신의 벽이 더욱 견고해진 순간이 있긴 했지만 결국은 그 벽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를 통해 현우는 세상을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볼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위로이자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준영은 변호사를 출세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던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현우의 변호를 맡으면서 현우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중간에 현우가 진짜 범죄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사로잡히긴 했지만 결국 그는 현우를 재심을 위한 법정에 세운다. 이를 통해 준영은 자신이 변호사로서 진정으로 지켜야 할 것은 돈이 아닌 기본 인권이라는 신념을 다시 세웠을 것이다.
이 둘의 변화는 현우의 무죄 선고를 이끌었고 서로의 삶의 방향을 변화시켰다. 준영은 현우에게 “너 살인범 만든 건 우리라고……. 우리들이 조현우한테 사과를 해야 한다고.”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현우는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현우를 처음부터 지켜본 준영은 그에게 진심이 담긴 사과를 한다. 한 사람이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 사람을 잠시나마 속였고 의심했던 것에 대해 사과를 한 것이다. 이렇듯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잘못을 했을 때 우리는 사과를 한다.
그렇지만 사회는 그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다. 현우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더라도 강압수사를 한 경찰,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검찰,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지 않은 사법부는 그 잘못을 저지른 개인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하지 않았다. 또한 조직적 차원에서 조금의 반성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나아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세상에서 현우가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 진정한 사과가 될지 의문이 들었다.
결국 현우와 준영이 우여곡절 끝에 재심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사회에 대한 믿음보다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이들에게 법은 강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도구이지 약자를 위한 울타리 되지 못했다. 오히려 서로의 존재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울타리가 되고 위로가 되었다.
영화 밖 우리의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는 법이 강자의 편에 서있다는 믿음이 만연해있다. 법은 본래 기본 인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약자의 인권은 보호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는 특정한 사람들만 보호하는 제도가 된 상황에서 그 특정한 사람이 되지 못한 이들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과 같은 존재들에게 받는 위로밖에는 없는 것일까. 사회가 사회적 약자에게 저지른 폭력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